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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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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난다

신형철 (지은이)

2022-10-31

대출가능 (보유:5, 대출:0)

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b>● 편집자의 책소개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4년 만에 선보이는 평론가 신형철의 신작

우리 문학을 향한 ‘정확한 사랑’이자 시대를 읽는 탁월한 문장, 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다섯번째 책이자 처음으로 선보이는 ‘시화(詩話)’임에 그 제목을 『인생의 역사』라 달았다. 저자 스스로 ‘거창한 제목’이라 말하지만, 그 머리에 ‘인생’과 ‘역사’가 나란한 까닭은 간명하다. 시를 이루는 행(行)과 연(聯),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일. 우리네 인생이, 삶들의 역사가 그러한 것처럼.
총 5부에 걸쳐 동서고금 스물다섯 편의 시를 꼽아 실었다. 상고시가인 「공무도하가」부터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까지, 역사의 너비와 깊이를 한데 아우르는 시들이다. 시 한 편마다 하나의 인생이 담겼음에, 이를 풀어 ‘알자’ 하는 대신 다시 ‘겪자’ 하는 저자의 산문을 나란히 더했다. 여기에 부록으로 묶은 다섯 편의 글은 시의 안팎을 보다 자유로이 오가며 써낸 기록이다.
시를 함께 읽고자 함이나 그 독법을 가르치는 글은 아니다. 직접 겪은 삶을 시로 받아들이는 일, 그리하여 시를 통해 인생을 살아내는 이야기라 하겠다. 저자의 말대로 시를 읽는 일은 “아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일 터이므로.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行) 아래로 쌓여가는(聯)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7쪽)

<b>▣ 신형철 글쓰기의 원형, ‘시화’

저자가 사랑한 시를 모으는 일이 하나, 함께 나눌 이야기를 덧붙이는 일이 하나. 시화라 함은 곧 인생을 배우고 인생을 시로 이루는 글이기도 하다. 10대 후반의 어느 날부터 시를 사랑했고 20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내놓은 연재 역시 이 시화를 흉내낸 것이었다 하니, 이번 책이야말로 평론가이자 작가 신형철의 글쓰기, 그 ‘원형’이라 하겠다. 저자의 말마따나 시가 인생의 육성이라 할 적에, 작가 신형철의 목소리에 가장 편히 붙는 곡이자 몸에 꼭 맞는 옷이 바로 시화인 셈이다.
이번 책에는 저자가 직접 번역한 아홉 편의 시를 실었다. 외국어로 쓰인 시를 나의 말 우리의 언어로 옮긴다는 것, 그 역시 시를 겪는 또하나의 방식일 테다. 어떤 시가 널리 사랑받을 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읽어낸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절실한 곳에 그 필요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번역, 그러니까 ‘옮김’의 미덕이리라. 그가 데려다준 곳에서 만나게 될 이 시들이 곧 우리가 기다리는 줄 모른 채 기다려온, 바로 그 시편들일 것이다.

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 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87쪽)

<b>▣ 인생 그 자체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5부에 부록까지 여섯 장의 제목을 먼저 모아둔다. 고통의 각, 사랑의 면, 죽음의 점, 역사의 선, 인생의 원, 반복의 묘. 삶의 키워드라 할 여섯 테마에 저마다 꼭 맞는 틀을 주었으니, ‘격’을 갖춤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1부의 제목이 ‘고통의 각’인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가장 오래된 고통’이라 할 「공무도하가」로 시작하니 말이다. 이어서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라 일컬은 성경의 「욥기」, 에밀리 디킨슨과 에이드리언 리치, 최승자로 이어지는 나머지 세 편의 시까지 통과하고 나면 저자가 우리 앞에 놓은 이 인생의 첫 얼굴이 ‘고통’인 연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고통이라는 날카로운 ‘각’을 겪어내는 슬픔이 있고, 이를 끝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리란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저자가 “일단 이 점을 자인하는 부끄러움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으리라” 말할 때, 불가능의 벽이란 ‘진짜 노력’의 시작점일 뿐이다. 전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부터 우리가 익히 배워왔던 바, 타인의 슬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영원히 공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생에 대한 이 책, 그 첫 화두는 필연 고통일 수밖에 없겠다. 인생의 공부가 여기서 출발하는 까닭에.
2부 ‘사랑의 면’에는 셰익스피어의 연가(戀歌) 소네트와 릴케의 비가(悲歌)가 나란히 실렸다. 이영광 시인에게서 배운 「사랑의 발명」, 나희덕 시인의 「허공 한줌」 속 부모의 사랑, 메리 올리버의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나아가려는 사랑…… 사랑이란 응당 인생을 채우는 너른 면이면서 그만큼 다양한 ‘얼굴들’이기도 하겠다. 두 편의 글에서 따로 쓰인 글을 이렇게도 나란히 놓아본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97쪽)

책의 허리, 3부에는 ‘죽음’을 두었다. 죽음이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질문이므로,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므로. 생육신 김시습에게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볼 때 죽음 곁에는 삶이 놓인다. W. H. 오든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 곁에 두는 것은 사랑이다. 황동규에게서 남은 자의 외로움을 홀로움으로 환히 밝히고, 월리스 스티븐스를 통해 인생의 불완전함을 가능성으로 치환한다. 죽음이라는 점으로 수렴하는 대신 여기서 다시 삶의 읽기를 시작해보는 일. 한강의 「서시」가 책의 시집의 맨 앞이 아닌 끝에 있는 이유와 이 책의 ‘죽음’이 한가운데 있는 이유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한 점, 인생의 방점이기도 하니까.
책의 제목부터 인생에 이어 ‘역사’를 두었으니, 4부의 제목 역시 ‘역사의 선’이다. 문학을 읽는 일이 슬픔을 공부하는 일인 것은 생이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삶과 삶들의 사이에 있는 까닭이다. 고대 그리스 서정시에서 읽는 국가와 ‘나’의 관계, 윤동주가 끝내 나아간 ‘최후’의 자리, 1980년대 잿더미 속에서 피워낸 황지우의 기적, 밥 딜런이 노래한 변화하는 시대, 신동엽이 꿈꿨던 ‘아름다운 석양의 나라’. 책의 제목부터 ‘인생의 역사’라 하였으니 큰 역사에 개인의 인생이 일방적으로 편입되어서는 안 되리라. 어쩌면 시를 읽는 일은 곧 “‘언제나’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그러니까 평화를 함께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5부는 ‘인생의 원’이다. 이성복, 레이먼드 카버, 김수영, 필립 라킨, 로버트 프로스트. 이름만으로도 불멸의 시인들이니, 끝나지 않을 원에 더없이 걸맞은 셈이다. “365일 내내 음미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 매년 주어지는 365개의 나날들, 그것들 외에 또 어디에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인생이라는 원을 두고 회전목마가 될지 굴레가 될지는 우리의 몫임에, ‘인생’에 대한 이 다섯 편의 시에서 저자가 발견하는 것은 감탄과 감사 혹은 은연한 빛이다. 그러므로 넘어가는 책장, 본문의 끝 무렵에 아쉬워하는 우리가 이 문장을 만날 때, 우리는 더없이 안도하게도 된다. “다행이지 않은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부록에는 시화를 대신해 보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다채로이 써간 글들을 한데 묶었다. 단연 한 편을 소개하자면 ‘윤상 덕후’를 자처하는 저자가 오타쿠의 덕(德)을 말하는 순간. 인간 신형철의 목소리를 듣는 새로운 기쁨이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에서는 예리하게 사회를 읽어내는 특유의 시각을, &lt;임을 위한 행진곡&gt;에서는 노래와 시대에 실은 진중한 음성을, 최승자와 황동규의 시를 읽는 비평에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평론가’ 신형철의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앞뒤를 감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소개도 빠질 수 없겠다. 그 제목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다.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 그리고 ‘돌봄, 조금 먼저 사는 일에 대하여’. 다소 벗어난 독법이려니 하면서도 두 제목의 ‘대하여’를 지나치지 못하겠다. 조심과 돌봄, 인생을 ‘대하는’ 저자의 작심이기도 할 테니까. 그 세심과 살핌이야말로 우리가 시를 읽고 인생을 대함에 가장 필요한 자세일 것이므로.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317쪽)

<b>▣ 내가 겪은 시를 엮는 일

책을 묶으며 한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단색화의 대가 박서보 화백의 작품으로 표지의 격을 더했다. 시화, 곧 삶 위에 선을 긋고 겪음으로 면을 이루는 일. ‘인생’과 ‘역사’가 나란한 제목에 다시 한번 방점을 찍어둔다. 책머리에 메리 올리버를 빌려 “시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 했고, 알렉상드르 졸리앵을 빌려 “인간이라는 직업”을 가진 모두에게 이 책을 바쳤다. 과연 그럴 것이다. 우리의 직업은 시를 넘어 인간, 그 과업은 씀을 담은 인생.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겪어야만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읽음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삶도 있을 것이다. 시라는 ‘빈 바구니’에 우리의 삶을 담음으로써 보다 넓고 보다 깊은 무언가를 얻게 하는 바로 그 일이 시화의 사명 아니겠나. 인생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물음이면서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되리라는 필시의 믿음으로, 이 책 『인생의 역사』를 권한다.

내가 조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그랬던 시들 중 일부를 여기 모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의 가장 심오한 페이지들에는 내 문장이 아니라 시만 적혀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에서 산발적으로 쓰인, 인생 그 자체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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