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서도 한 복판인 가회동(嘉會洞) 막바지에는 맹현(孟峴)이라는 조그만 한 고개가 있으니(가회동에서 화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 그 고개는 세상에서 혹은 또 맹감사재라고도 한다. 그러면 그 고개를 어찌하여 맹감사재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옛날 세종대왕(世宗大王) 때에 유명하던 맹 고불(古佛) 맹 정승(政丞)이 아직 일국의 정승이 되지 못하고 일개 지방의 감사(監司)로 있을 때에 일찍이 그 고개를 밑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었다. 그 맹 정승의 본 이름은 사성(思誠)이요, 자(字)는 성지(誠之), 또한 자는 자명(自明)이요, 호(號)는 동보(東甫), 고불은 그의 별명이니 원래 충청남도 온양 태생이었다. -<본문에서>
공당 문답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