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가 흐물흐물 거리면서 흐른다. 녹색도 아니고, 푸른색도 아닌 기묘한 저녁의 빛깔로 물들어있다. 속도감 있게 사라지는 그들의 저 너머로 거울처럼 비춰진 누군가의 얼굴이 있다. 담배를 피우고 있다. 천천히 응시하는 너머에 긴 라인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지나간다. 야자수가 잠시 사라진 사이에 흰색 벽이 한참을 흐른다. 얼굴은 살짝 또렷해지다, 급작스럽게 나타난 청색의 흐름에 한걸음 멀어져 희미해진다. 해변에 나른하게 서있는 야자수의 발랄함은 그곳에 없다. 빽빽하게 들어선 어두운 빛깔의 덩어리는 끝도 없이 펼쳐진 겨울 숲처럼 깊기만 하다. 정글은 아름답기보다는 생존의 치열함을 연상시킨다. 암전. 모든 것은 검은색에 흡수되어버리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
9791130326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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