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이야기 (헐리우드 키드) <헐리우드 키드> 미국 영화 역사와 작품 이해하기! 미국영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데이비드 W.그리피스의 <국민의 창생>(1915)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미국영화는 무성영화시대에 찰리 S.채플린을 비롯한 세실 B.데밀, 루이스 B.메이어 등 천재들의 활약을 거쳐, 존 배리모어의 <돈 환>(1926)으로 토키(發聲映畵)시대로 건너뛰게 되었다. 알 존슨의 <재즈 싱어>(1927)와 요제프 폰 시테른베르크의 <모로코>(1930) 등 발성영화 초기의 걸작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발성영화에 대한 찬반 논쟁은 발성영화쪽의 승리로 굳혀지고, 골드윈, 데이비드 O.셀즈니크, 다릴 자누크, 세실 B.데밀 등이 대제작사를 창설함으로써 할리우드는 세계영화산업의 중심지로 뛰어올랐으나, 1930년을 전후한 미국의 경제대공황(經濟大恐慌)에 휩쓸려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되었다.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를 발표해서 자본주의 산업사회체제 아래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동정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경제대공황은 1933년경부터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으나 1937년까지 별달리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으며, 헨리 코스타의 <오케스트라의 소녀>(1937)에 이르러 미국영화는 비로소 지난날의 낙천주의를 되찾게 되며, 또한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색다른 뮤지컬 터치로, 이후 미국의 뮤지컬 영화 발전에 큰 공헌을 남기게 된다. 1939년 빅터 플레밍 감독이 395만 달러를 들인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내놓아 7,703만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는 바람에 미국영화는 크게 기염을 토하게 되었다. 같은해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영화화한 <애정(哀情)>을 내놓아, 대작은 아니지만 밀도있는 작품으로 성공했다.
판권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