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작가들이 급속히 유물론의 세례를 받기 전에는 앞으로 상당한 시일을 두고 제파(諸派)의 문학은 오히려 진전의 과정을 밟을 것입니다. 또한 조선의 지식분자가 아직까지도 대부분 민족주의의 경향을 가지고 있는 터이라 그네들 지식층이 깡그리 몰락을 당할 날이 올 것을 가상하더라도 일조일석에 앞을 다투어 방향을 전환하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분간 주의에 관한 이론은 고사하고 같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작품이라도 역사를 들추어 새삼스러이 위인걸사를 재현시키고 또는 창작하는 것으로 능사를 삼지 말고, 우리가 눈 앞에 당하고 있는 좀 더 생생한 사실과 인물을 그려서 대중의 가슴에 실감과 감격을 아울러 못 박아줄 만한 제재를 골라가지고 기교껏 표현할 것입니다. 엄연한 현실을 그대로 방불케 할 자유가 없는 고애(苦哀)야 동정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모든 현상은 전연 돌보지 않고 몇 세기씩 기어올라가서 진부한 ‘테마’에 매달리는 구차한 수단을 상습적으로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비겁한 현실도피인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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