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주렸던 이들 : 이광수 4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편소설)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일본 유학 중에 소설과 시, 논설 등을 발표하였고,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망명, 1919년 도쿄(東京)의 조선인 유학생의 2·8 독립 선언을 주도했으며, 2·8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후 3·1 운동 전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독립신문을 발행했다. 1921년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언론에 칼럼과 장·단편 소설, 시 등을 발표하였다. 안창호, 윤치호, 김성수 등의 감화를 받아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제창하였으며, 1922년 흥사단의 전위조직인 수양동맹회를 조직하고, 안창호를 도와 흥사단 국내 조직과 수양동우회에 적극 참여하였다.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하여, 친일파로 굴곡을 겪기도 한 이후에는 친일 행각을 비판받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민족성, 인간성의 개조를 주장하였고 일제 시대 영향을 주었던 나치즘 사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안창호, 윤치호의 사상적 계승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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