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소(隘少)하고 침음(沈陰)한 실내 5·6촉밖에 안되는 전등이 높게 걸려있다. 전등 밑에는 소형의 책상 하나 그 위에는 장부같은 몇 권, 또 좌종 시계 하나 있어, 고요한 밤에 혼자 째깍거리고 있다. 방 안구석에 순옥이가 머리 위에 바느질 상자를 두고, 치마 입은 채, 이불도 없이 우제와 같이 잔다. 밖에서는 늦은 가을 바람 부는 소리가 가끔 우루우루 들린다. 덕세가 낡은 양복을 입고, 공포한 얼굴로 숨을 헐떡거리며 무대 좌편에 있는 대문 앞으로 뛰어온다. 덕세 (대문을 당겨보다가, 뚜드리며) 여보. 여보. 순옥 (무답) 덕세 (앞뒤를 도라보며, 황급하게) 여보. 순옥씨. 순옥씨. 문 좀 열어주오. 응. 문 좀 열어주어! 순옥 (무답) 덕세 여보. 순옥씨. 내 왔어요. 응. 순옥씨 내 왔어요.(소리를 약간 돋우워) 순옥씨, 문 얼른 열어주오. 응. 순옥 (벌떡 일어나서 대문으로 나오면서) 예. 예. 누구시오. 덕세씨요? (대문을 연다.) 덕세 예. 예. 그렇소. 나요. 얼른 열어주오.
판권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