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백여 년 전 일이었습니다. 영남 박생(朴生)의 가비(家婢) 매월(梅月)의 우수한 글재주와 절륜한 자색은 영남 일대는 물론이요 한양(漢陽)까지 소문이 자자하였습니다. 고을살이나 한자리 얻어 할까 하여 조상들은 배를 주리면서 벌어 놓은 전장을 턱턱 팔아서 조정에 유세력하다는 대감님네 배를 불리는 유경(留京) 선비들 입에서도 박생의 가비 매월이가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자주 흘러나왔습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거반 침을 꿀꺽꿀꺽 삼켰습니다. 그러나 박생은 자기 집에 그렇게 서시 같은 절묘한 미인이 있는 줄은 몰랐었습니다. 박생은 영남에서 양반의 자손이요 가세도 넉넉합니다. 그도 벼슬이나 한자리 얻어 할까 하여 상경한 것입니다. 그러나 벌써 돈도 쓸 대로 썼고 여름이면 빈대 벼룩이 득시글득시글하고 겨울에는 벽에 반짝반짝하는 찬 서리가 들이 돋는 이대감집 사랑방에서 육 년이나 등을 치고 있으나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이렇지만 박생은 그것이 심려가 될지경 갑갑하거나 궁금치는 않았습니다. 매일 기생의 가무 속에서 술 먹고 풍월 짓고 담배 피우고 낮잠 자고 조금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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