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교 3년급생 정숙은 새로 한 점이 넘어 주인집에 돌아왔지만, 여름 밤이 다 밝지도 않아 잠을 깨었다. 이 짧은 동안이나마 그는 잠을 잤다느니 보다 차라리 주리난장을 맞은 사람 모양으로, 송장같이 뻐드러져 있었다. 뒤숭숭한 꿈자리에 가위 눌리고만 있었다. 물같이 흐른 땀이 입은 옷과 이불을 흠씬 적시고 있었다. 어째 제 주의 모든 것이 변한 듯싶었다. 그는 의아히 여기듯이 이리저리 시선을 던지었다. 새벽 빛은 허여스름하게 미닫이에 깃들이고 있다. 맞대 놓인 두 책상 위에 세워 있는 책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제 곁에는 깊이 잠든 정애의 까만 머리가 흰 베개 위에 평화롭게 얹히어있다. 이불이고, 요이고, 베개이고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있던 그대로 있었다. 변해진 것은 제 자신이었다. 그는 어젯밤에 겪은 일을 생각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경과는 부연 안개에나 가린 듯이 흐리멍텅하였다. 몹쓸 악몽을 꾸기는 꾸었으나 모두 어떠한 것이든지 회상할 수 없는 모양으로.
판권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