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에 비해 덜 조명받았던
조선 시대 집권층들의 그림
보통 사람들에게 조선 시대의 그림 중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를 언급할 것이다. 지금까지 풍속화를 통해 조선 시대 서민들의 삶을 분석한 역사 교양서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 풍속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당시 서민들의 모습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도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보이는 청춘 남녀의 은밀한 밀회를 엿보는 즐거움이라든지, 김홍도의 「씨름도」에서 느껴지는 활기차고 역동적인 분위기는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도 우리에게 그 시대 서민들의 해학과 낭만을 전달해준다.
그에 비하면 왕실, 관리, 학자 등이 남겼던 그림들은 상대적으로 딱딱하고 정적인 느낌 때문에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감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동안 그들의 그림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국사 교과서에 나오면 외워야 하는 공부거리쯤으로 여겨졌고, 옛 그림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화법이나 양식에만 국한된 시각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우리의 역사를 이끈 주역이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조선 시대 풍속화들이 서민들의 삶을 표현했던 것처럼 당대의 집권층들이 남겼던 그림도 조선의 정치적 신념과 이상을 보여주는 자료다.
"허균(許筠, 1569년 12월 10일(음력 11월 3일) ~ 1618년 10월 12일(음력 8월 24일))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이자 작가, 정치가, 시인이었다. 서자를 차별 대우 하는 사회 제도에 반대하였으며, 작품 《홍길동전》이 그의 작품으로 판명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본관은 양천,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또는 학산(鶴山), 성소(惺所), 성수(惺)로 불렸고 후에는 백월거사(白月居士)로도 불렸다. 1594년(선조 27년)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597년(선조 30년) 다시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여 공주 목사를 거쳤으나 반대자에게 탄핵받아 파면되거나 유배당했다.[1]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불교를 신봉하여 논란을 야기(惹起)하기도 했다. 벼슬은 정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 대북에 가담하여 실세로 활동하였으나 1617년(광해군 10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적극으로 가담하였다. 신분제도와 서얼 차별에 항거하려고 서자와 불만하는 계층을 규합하여 혁명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이를 비판하던 기자헌을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반역을 도모하려했다는 기준격의 밀고로 능지처참되었다. 그의 문집은 시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 왕조 치하에서 모두 인멸(湮滅)될 뻔하였으나 그가 죽음을 예상하고 당시 소년이던 외손자 이필진에게 전해줘서 후대에 전래었다. 홍길동전과 성소부부고 등을 남겼다. 특히 홍길동전은 무명으로 발표하였으나 나중에 유몽인이 그의 작품이라는 기록을 남겨 알려지게 되었다. 당색(黨色)으로는 동인이었으며 북인, 대북으로 활동하였다. 초당 허엽의 아들로, 허성의 이복제(異腹弟)이자 허봉, 허난설헌의 친제(親弟)이다. 우성전은 그의 이복 매부였다. 손곡 이달과 서애 류성룡의 문인이다. 동인의 초대 당수 성암 김효원(金孝元)의 사위이다. 강원도 출신."
머리말
1장 미美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함과 맞선 지식인들
01 권력투쟁 중에 꿈꾼 이상 세계 : 안견의 「몽유도원도」
촉망받은 왕자이자 서예가, 안평대군 | 꿈속에서 도원을 거닐다 | 안견이 그린 도원경 | 「몽유도원도」의 발문과 찬시 |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의 권력 암투
02 당쟁 속에서 빛난 절의 : 김정희의 「세한도」
연경 학자와의 교유 | 정치 바람에 휩쓸린 유배 생활 | 이상적의 지조와 정성을 칭찬하다 | 「세한도」의 상징성과 역정 | 다시 유배의 길로
03 유배 생활 속에서 탄생한 교훈적 그림 :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당쟁의 소용돌이 | 강진 유배지에서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교훈을 담은《하피첩》 | 딸에게 그려준 「매화쌍조도」 | 제시에 담긴 부정
2장 한 폭의 그림으로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다
04 신격을 가진 왕의 초상 어진
신인동체의 인간상 | 어진 제작 목적과 숨은 뜻 | 진전 제도와 태조의 경기전 | 경기전의 길상 장식
05 창업 군주의 신성과 권위의 상징 「태조 팔준도」
영적 존재로서의 말 | 혁명 군주와 준마 | 조선 태조의 팔준마 | 《용비어천가》와 안견의 「팔준도」 | 세조, 숙종 대의 준마도 | 정조의 치마대비
06 왕도 정치의 이상 실현을 위한 수신 왕실 감계화
선정을 위한 다짐, 좌우명과 의기 | 사왕에게 준 애민의 교훈시, 빈풍칠월편 | 권농과 자경, 「빈풍도」와 「무일도」 | 왕정의 선무를 깨닫게 하다, 경직도 | 백성을 두려워하는 군주의 자세, 주수도 | 모범적 선례를 따라서, 고사인물화
07 유교 정치 속의 원초적 욕망 왕실 발원 불화
권신들과 내명부 수장 간의 갈등 | 계속되는 왕실 불사 | 왕실 불교의 존재 이유 | 왕실 발원 불화
08 도법 자연의 도상적 표현 「일월오악도」
도의 본원 상징으로서의 하늘 | 음양, 밝음, 편조 상징으로서의 일월 | 땅의 대표 상징으로서의 오악 | 포용과 분화의 상징으로서 파수와 낭수, 그리고 유수
3장 붓 끝, 한 획마다 시대의 고민을 담다
09 출처의 기로에서 번민하는 문인들의 초상 : 「조어도」
강태공, 엄자릉, 그리고 이윤 | 진정한 출과 처의 의미 | 「조어도」의 작품 세계
10 연좌제의 질곡 속에서 누린 원천적 자유 : 김시의 「목우도」
역적의 자손으로 전락하다 | 처를 강요당한 자의식 강한 처사 | 오묘한 경지에 이른 그림 세계 | 소에게서 찾은 원천적 자유와 해탈의 경지
11 울분과 탄식의 시여 : 심사정의 「탁목조」
몰락한 세도가의 자손 | 연좌제의 후환과 고독한 삶 | 중국에까지 알려진 그림 실력 | 딱따구리에 자신의 심회를 의탁하다
12 중인 화가의 문인적 취향 : 김홍도의 「단원도」
중인 출신의 위대한 예술가 | 지방 관리로 나서다 | 위항인들이 향유한 선비 문화 | 「단원도」의 화의와 탄생 배경 | 신분 상승의 욕구와 현실적 한계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