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이종환이 사랑에 관한 통념을 부수는 특별한 에세이 ""애정사전""을 펴냈다. 막연하게 감성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에 관한 기존의 언어들을 그 의미를 분해하거나 뒤집어 보이며 새롭게 해석했다.
▶책 속으로
애정사전 촌철살인의 정의 짧게 엿보기
{전화} 그리움의 적, 그리움 차단기. ; 나는 너와 헤어져 휴대폰의 폴더를 열고 너를 호출한다. 너의 음성을 듣고 너의 안위를 확인한다. 너는 없으면서 있고 있으면서 없다. ... 그리움은 쌓일 틈도 없이 휴대폰의 문자 속으로 즉각즉각 흩어진다. ...
{연민} 사랑을 찾아가는 도정에 놓여 있는 신호등 ; 너의 머리 위에는 신호등이 걸려 있다. 기쁨과 슬픔으로 반짝이는 신호등. 희망과 절망으로 반짝이는 신호등. ... 얼마나 많은 애정들이 이 과정에서 실패했던가. 단순하게 상대방을 끌어안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애정들이 좌초했던가. ...
{수치심} 나 외에도 무수한 나가 있다는 것, ; 그 순간 나는 무너진다. 너의 눈빛 속에서 나는 찾을 수 없고, 나는 떨어져나간다. ... 나는 극렬한 고통을 느낀다. 숨막히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토한다. ...
{사랑} 현존하는 사람과의 삶, 혹은 살아감. 그곳에 부침 ; 너는 얼음 같은 존재다. 헌신적이기 이전에 냉정했고 둔감하기 이전에 이지적이었다. 그래도 너는 얼음 같은 존재다. 송곳이 박히는 순간처럼,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
{추문} 주목받는 생일수록 추문에 휩쓸릴 가능성이 많으며 추문에 이르는 지름길은 출세.
{지식} 애정에 딴지 거는 파파라치.
{권위} {지식}과 한동네에 살고 있는 애정의 최대의 적.
{짝사랑} 콩 심은 데 콩 안 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유형의 애정 ... 일부에서 선전하고 있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혹은 칠전팔기, 더 심하게는 하면 된다 따위의 치료제는 허위성 과장 광고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절대 믿어서는 안 됨.
{변태} 성애에 관한 아방가르드적 태도, 혹은 일종의 낯설게하기.
{상사병} 예전에는 흔했으나 요즘에는 드물게 발견되는 폐쇄성 그리움 질환,
문학평론가.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에서 배웠고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어느 날 우리는 시련을 겪고 어느 날 우리는 희망을 품는다. 어느 날 꽃들이 몸을 열고 어느 날 누군가 죽는다. 폭설이 내려 길을 지우기도 한다. 사랑 또한 그러하리라. 어느 날 갑자기 열병 앓는 사랑의 시기가 찾아와 눈멀고 귀먹게 한다. 이 맹목은 커다랗게 뭉쳐진 구름 덩어리 같아서, 먹장구름 다 내려놓아야 폭우가 멈추듯 사랑에 대한 집착 또한 풀린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참혹하다. 사랑이 위대하다는 진술은 특히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집착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참혹하다. 사랑이 그 참혹함의 감방에서 나오려면 관계의 그물망을 넓히는 수밖에 없다. 집착을 덜 할수록 이 그물망은 넓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넓은 그물망으로 멀리 던지기를 해야 한다. 사랑의 종소리가 멀리멀리 펴져나가도록 해야 한다. 애정사전은 그 단초다.
목차 정보가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