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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의 홍범구주와 이데올로기 정치학, 불씨잡변

정도전 지음(탁양현 엮음) | e퍼플
  • 등록일2018-12-17
  • 파일포맷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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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三峯 鄭道傳의
洪範九疇와 Ideologie 政治學
그리고 佛氏雜辨
三峯 鄭道傳의 政治哲學을 大別하는 槪念은 洪範九疇와 Ideologie다. 정도전의 시대에, 세계의 覇權國은 두말할 나위 없이 中國이었다. 때문에 정도전은 政權의 簒奪을 위해 중국과의 外交로써, 그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 정도전의 시대는, 高麗王朝에서 朝鮮王朝로 易姓革命이 實行되었다. 그 혁명의 중심에 정도전이 있었다.
당시의 혁명은 理念革命의 성격이 짙다. 그 이념혁명의 주된 대상은 佛敎思想이었다. 그 실제적인 검증자료는 말할 나위 없이 佛氏雜辨이다. 정도전은 불교사상을 정치철학적으로 論破함으로써, 새로운 政權의 정당성을 모색한 것이다. 물론 佛敎만이 王朝交替의 빌미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혁명의 動力으로 삼으려고 했던 정도전의 시도는, 지극히 현대적인 革命論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삼봉 정도전의 혁명론은, 그 전반적인 이념적 바탕을 書經의 洪範九疇에 두고 있다. 나아가 정도전이 활용하는 홍범구주는 箕子朝鮮에 사상적 기원을 둔다. 때문에 정도전은 자연스레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을 기자조선에 두게 된다. 이는 역성혁명 당시 朝鮮이라는 國號가 결정된 까닭이기도 하다.
書經 甘誓에서는, 五行이 서경의 시대로부터 지극히 정치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임금의 아들 啓는, 우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세습 받는다. 그런데 庶兄 有扈氏가 그 왕위계승에 不服하자 정벌을 감행한다. 계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보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유호씨가 五行의 원리를 저버리고, 三正을 태만히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벌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水火木金土의 오행의 원리나, 天地人 三才의 바른 도리로서의 삼정은 지극히 철학적인 원리들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거부가 정벌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에서 오행과 삼정을 해석하여 자기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불복에 대한 보복이라는 실제적인 정벌 이유와는 특별한 연관이 없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계는 만약 命을 따르지 않는다면, 정벌의 대상인 유호씨는 물론이며, 하나라 朝廷의 신하일지라도 아주 가혹한 刑罰을 부과할 것임을 선언한다. 이러한 선언이 가능한 것은, 계의 명령은 天命에 따라 天罰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경의 시대에는 응당 이러한 논리를 信念하므로 정치보다는 종교에 가까운 측면이 있지만, 그 명령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철학적 원리를 거론하여 정치적인 결정을 하므로 지극히 정치철학적이다. 더욱이 가혹한 형벌의 부과가 가능한 것은 오행이나 삼정의 권위가 그만큼 강력했음을 示唆한다.
조선왕조에서 五行에 대한 이해는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다. 조선왕조 前期 徐居正은 四佳集에서 이와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다. 서거정의 陰陽五行에 대한 이해는,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에게서 일반적인 것이다. 서거정은, 聖人에 의해 제작된 홍범구주나 주역에 의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에 내재된 철학적 理致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실제로 점을 쳐서 吉凶이나 善惡을 결정하는 일은 排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행이라는 것은 천지자연에서의 삶의 조화를 목적하여 도출된 철학적 사유방식이며, 그것으로써 운명을 점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점을 치더라도, 그것은 홍범에서 이르는 稽疑나 庶徵의 경우처럼 일종의 幾微이며, 그러한 기미를 잘 살펴서 天命을 좇아 人性을 올바르게 하는 삶의 방향을 摸索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서거정은 태어난 歲月日時의 四柱로써 세 가지 등급의 운명[三命] 따위를 거론하는 牽强附會를 例로 들어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도 甘誓의 시대처럼, 현실적으로 오행은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 우임금의 아들 계는 禪讓이 아니라 世襲으로써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러한 夏나라의 政治權力的 변화는, 이후 중국의 왕조들은 물론이며 조선왕조까지도 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측면은, 오행의 해석과 활용에 있어 감서의 시대와 조선왕조가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짐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조선왕조에서는 오행을 거스르면 천벌을 받게 된다는 논리를 확장하여 道敎나 佛敎를 비난하고, 지속적으로 배척한다. 조선왕조가 政權의 정통성을 보장 받기 위해 事大主義的 儒學을 國是로 삼았으며, 때문에 도교나 불교의 경우처럼 유학 이외의 학문으로 분류되는 것들을 異端이나 邪道로 규정하고서 탄압했음은 周知의 사실이다. 이는 오행 개념을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월 10일 乙亥日 2번째 기사(1400년, 明 建文 2년)에는, 定宗이 經筵에서 강론하는 내용이 있다. 이 記事로써,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이 부처를 귀신과 유사한 존재로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은 지극히 정치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定宗은 자기의 실제적인 체험을 거론하며, 흔히 샤머니즘이나 民間信仰으로 분별되는 것에 대한 河崙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부처가 주장하는 慈悲와 不殺生의 가르침은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륜은 부처의 자비나 불살생은 당시 西域의 상황에서 유효할 따름이며, 불교의 핵심 敎理인 輪?나 報應 역시 유교의 철학적 인식과는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이제 談論은 神話의 차원으로 飛躍한다. 정종이 어떤 의도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정종은 부처의 誕生說話와 死後地獄說에 대해서 묻는다. 정종은 동생 李芳遠에 의해 왕위에 오른 탓에, 아무런 實權이 없는 왕이었다. 때문에 재위 2년 만에 寶位를 이방원에게 넘겨주고 上王으로 물러난 인물이다.
따라서 위의 기사 내용이 재위 2년에 발생한 일을 기술한 것이므로,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내재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없지 않다. 여하튼, 정종의 질문에 대한 하륜의 답변은 표면적으로는 소박하며 신념에 차 있다. 부처가 사람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거나, 사람이 죽으면 地獄으로 간다는 것은, 한갓 似而非의 惑世誣民에 불과하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음양오행의 원리를 설명한다.
하륜의 論理를 살필 때, 그가 발언하는 음양오행이 似而非的이지 않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음양오행 역시 신화적인 神異의 차원에서 작동할 때에는, 그 폐해가 별다를 게 없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하륜은, 당시 정종의 정치적 立地나 조선왕조 초기의 政局을 思慮한, 정치적 의도가 내재된 발언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한 답변에 대해 수긍하는 정종의 태도 역시 그러하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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