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世堂의 儒家哲學 비판, 思辨錄
朴世堂(1629~1703)의 삶의 歷程을 살피다 보면, 어쩐지 前代 李卓吾(1527~1602)나 後代 丁若鏞(1762~1836)의 삶이 overlap된다. 그들은 모두 시대와 不和한 流配旅行者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은 當代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유가철학에 대한 否定에서 기인한다.
獨尊儒術이라는 표현처럼, 유가철학은 사상적 부정이나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자는 그저 斯文亂賊일 따름이다. 그런데 그러한 측면은 人類史에서 작동하는 온갖 이데올로기적 철학사상에 공통한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주의, 사회주의,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독재주의, 친미, 친중, 친일, 반미, 반중, 반일, 종북, 보수, 진보 따위의 온갖 이데올로기적 가치들이 뒤어켜 泥田鬪狗하고 있다.
그러한 이전투구의 가장 근본적인 까닭은 生存의 利得이다. 인간존재로서 생존을 위해 전쟁마저도 不辭해야만 한다. 게다가 그러한 생존을 넘어서는 이득을 목적케 되면, 이제 그 가혹함과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케 된다. 그러한 사례는 인류의 역사가 생존의 이득을 위한 전쟁의 역사라는 史實로써 쉬이 검증된다.
박세당의 시대는 國內政治의 시대였다. 그러다보니 생존의 이득의 명분이라는 게 기껏해야, 예컨대 上服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의 문제 따위를 빌미 삼아 상대편을 處斷키도 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당최 납득되지 않을 수 있지만, 주자학적 禮治를 이데올로기 삼는 당시에는 마땅히 문제될 수 있다. 더욱이 그 裏面에는 조선왕조의 政權을 左之右之하는 黨派의 문제가 얽혀 있다. 1년을 택하느냐 3년을 택하느냐에 따라 목숨의 與奪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자학적 올바름은 현대사회의 정치적 올바람에 비견될 수 있다. 흔히 PC라고 지칭되는데, 이는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 사회적 운동을 의미한다.
PC운동의 Political Correctness는 흔히 정치적 匡正, 정치적 공정성, 정치적 올바름 등으로 번역된다.
문화상대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삼아, 인종, 성, 성적 지향, 종교, 직업 등에 대한 차별이 느껴질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더불어 차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곧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주창하면서,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 근거한 언어 사용이나 활동에 저항해, 그걸 바로 잡으려는 운동이다.
미국 중산층의 언어 사용에 주목해, 차별이나 편견에 바탕을 둔 언어적 표현이나, 마이너리티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시정케 하는 PC운동은, 1980년대에 미국 각지의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됨으로써,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표현을 시정하는 데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PC 운동은, 그간 대학에서 가르쳐 온 위대한 책들이니 걸작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서구 백인들의 문화유산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소수 인종 문학 텍스트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PC운동은 나이에 대한 차별(ageism),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차별(heterosexism), 외모에 대한 차별(lookism), 신체의 능력에 대한 차별(ableism) 등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주장이 그릇될 리 없다. 응당 어느 누구라도 차별당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나 세월 안에서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은 또 하나의 새로운 권력으로서 가혹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런 것이 인류사회의 권력이 지닌 기묘함이다.
그러한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불화한 탓에, 이탁오, 박세당, 정약용 등은 죄다 자의든 타의든 유배적 은둔의 삶을 살아내야만 했다. 그런 박세당의 시대에 비한다면, 21세기는 國際政治의 시대다. 국제정치를 조작하는 Great Game의 양상은 실로 복잡하며 복합적이다. 그러다보니 21세기에는 당최 은둔할 수 있는 시공간마저도 不在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정치의 경우에도, 21세기 한국사회의 상황을 볼 때, 박세당의 시대에 비해 별반 나아진 게 없다. 保守는 이미 낡아버렸고, 進步는 이미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보수세력이 유가철학 흉내를 내더니, 진보세력이 執權하고서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제 진보세력 역시 유가철학 흉내를 내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며, 곪은 종기는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보수가 그러했듯 진보 역시 이내 고이고 곪아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인 탓에 역사의 本性的 日常이다. 다만, 그런 시대 이데올로기와 불화하여 비판하는 자는, 결국 이탁오, 박세당, 정약용 등과 유사한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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