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내성의 장편 추리소설.
1919년 평화의 동산 삼천리강토를 피로 물들인 기미년 3월 중순의 일이었다. 민족 자결의 고매한 이상 밑에서 일제히 일어선 삼천만 민중은 내 땅을 내라! 내 자유를 내라! 하고 목구멍에서 피를 쏟아 가면서 힘차게 부르짖은 3월 1일이었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3월 1일은 마침내 힘없는 민족의 쓰라린 비애와 함께 저물어 버렸던 것이니 삼천리강산 방방곡곡에 무섭게 풍기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사람들은 그날그날을 학살과 투옥과 암흑과 공포와 전율 속에서 맞이하였다. 애국자들은 온갖 수단을 강구하여 그 무자비한 통치자의 손을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썼다. 어떤 사람은 중처럼 고깔을 쓰고 어떤 사람은 상주처럼 방갓을 깊이 내려 쓰고 어떤 사람은 여복을 입고 어떤 사람은 거지처럼 변장하여 가면서 혹은 해안선에서 밀선을 타고 혹은 육로로 압록강 다리를 건너서 해외로 망명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무단 정치의 세포 조직은 방방곡곡에서 그 잔인한 눈초리를 희번덕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관헌의 눈을 피하여 몰래 해외로 빠져나가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김내성1909년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1935년 일본 추리문학 잡지 『프로필』에 「타원형 거울」과 「탐정소설가의 살인」이, 대중잡지 『모던일본』에 「연문기담」이 당선되어 일본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귀국 후 「탐정소설가의 살인」을 개작한 「가상범인」을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하며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가로 등장했다. 그 후 「타원형 거울」 역시 「살인 예술가」로 개작해 1938년 『조광』에 연재했다. 1940년에 발표한 「그림자」는 이후 개작을 거쳐 작가의 두 번째 단편집 『비밀의 문』의 표제작이 되었다. 「그림자」는 일종의 라디오 방송극 대본으로 「진주탑」 등과 함께 현재 완전한 형태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해방 이전 방송극 대본이다. 1946년을 기점으로 작가의 소설 세계는 ‘추리’에서 ‘대중’으로 전환을 맞이한다. 『청춘극장』 『쌍무지개 뜨는 언덕』 『인생화보』 『애인』 『마인』 등의 걸작을 남겼으며, 그중 『애인』은 1956년 영화화되었다. 경향신문에 『실낙원의 별』을 연재하던 중 1957년 2월 19일에 뇌일혈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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