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은 625 전쟁통에 가족을 먹여 살릴 힘이 없어 1952년 7월경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친정으로 보냈다. 홀로 남은 이곳저곳 떠돌며 가족에게 많은 편지를 띄웠다. 현존하는 편지는 약 70통이다. 이 책은 그중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화를 중심으로 엮었다. 편지는 모두 일본어로 씌어졌는데 편지에 그림을 그렸으므로 편지화라 부른다.
대향(大鄕) 이중섭(1916~1956)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지주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친가 쪽은 대지주이고, 외가 쪽은 평양의 민족 자본가 집안이었다. 5세 무렵 아버지가 사망했다.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데이코쿠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얼마 후 좀 더 자유로운 분카쿠잉으로 옮겨 수학했다. 여기서 후배인 일본 여성 마사코를 사귀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 머물면서 그림그리기에 몰두했다. 1940년 도쿄와 경성에서 열린 제4회 지유텐에서 서 있는 `소`, `망월`, `소의 머리` 등을 출품하여 찬사를 받았다. 1745년 마사코가 일본에서 홀로 건너와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름을 이남덕으로 바꾸었다. 첫째 태현(1947)과 둘째 태성(1949)이 태어났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했다. 부산 범일동 창고에 거처하며 부두에서 짐 부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1951년 더 살기가 낫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과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러나 서귀포에서 셋방을 살면서 피난민에게 주는 배급과 고구마로 연명하면서 게를 잡아 반찬으로 많이 먹었다. 서귀포에서 그린 그림은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바닷가의 아이들이 있다. 1952년 생활고에 못 이긴 마사코는 결국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가게 된다. 그 후 이중섭은 1953년 도쿄에서 단 5일의 해후를 끝으로 가족과 영영 이별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이별의 아픔은 아이러니하게도 필생의 걸작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1954년까지 통영에 머무른 그는 소 연작 등 한국미술의 대표작을 쏟아냈다. 주요작품으로는 `황소`를 비롯한 여러 `소` 그림과 `달과 까마귀`, `도원`, `돌아오지 않는 강`, `길떠나는 가족`, `아이들` 등 300여 점이 있다.
■ 작가소개 ■ 아들에게 보내는 그리움 편지 ■ 작가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