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에서는 작품이 지닌 현실 풍자와 비판적 특성으로 인해, 당시의 인습적이고 관념적인 사상의 질곡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지식인의 고민이 투영되어 있다. 일부 작품에서는 당시의 위정자, 지식인 등 상층부에 대한 현실적 비판과 각성을 촉구하였으며, 전래 민간설화를 소재로한 작품에서는 서민들의 삶과 인간성에 대한 진솔한 모습을 묘사하면서도 윤리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지원(朴趾源, 1737~ 1805)은 조선 후기의 문호이자 실학자로,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밖에 공작관·무릉도인(武陵道人)·박유관주인(薄遊館主人)·성해(星海)·좌소산인(左蘇山人) 등의 호를 사용하였다.
1786년 음직으로 처음 선공감 감역이라는 벼슬을 지냈으며, 이후 여러 말단 벼슬을 거쳐 1792년 안의현감에 임명되었고, 1797년 면천 군수가 되었다. 1800년 양양부사에 승진,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홍대용과 함께 조선의 주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 위에서 이용후생의 실학을 모색했으며, 창조적이고 성찰적인 글쓰기를 통해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이 갖고 있던 미망과 편견, 허위의식과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사유와 미의식의 지평을 몸소 열어 나갔다. 당색으로는 노론이었으나 북학파(北學派)를 세워 그 영수가 되었다.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청나라의 우수한 점을 배워야 한다며 상공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상주의를 주장하였다. 그의 제자로는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 《허생전(許生傳)》, 《양반전(兩班傳)》, 《호질(虎叱)》, 《민옹전(閔翁傳)》, 《광문자전(廣文者傳)》, 《마장전》, 《우상전(虞裳傳)》, 《역학대도전(易學大盜傳)》, 《봉산학자전(鳳山學者傳)》 《김신선전(金神仙傳)》,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등의 한문소설이 있다.
저서로 『열하일기』, 『연암집』, 『과농소초』, 『한민명전의』, 『안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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