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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朝花夕拾, 조화석습) 들으면서 읽는 중국어 명작 004

루쉰 (魯迅) | 부크크
  • 등록일2018-12-17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0 K  
  • 지원기기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 보유현황보유 1, 대출 0, 예약 0
  • 평점 평점점 평가없음

책소개

『아Q정전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는 격동의 시대, 리얼리스틱하게 묘사된 민중의 한과 역사에 묻혀가는 수많은 아픔을 보듬는 부드러운 손길이 담겨 있다. 중국근대문학 대문호 루쉰의 대표작
중국 근대기 대표적 사상가이자 작가인 노신의 수필집. 중국 현실을 과감히 비판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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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 오디오북 제작 전문출판사입니다.

저자소개

루쉰 (魯迅) (노신) ] 1881.9.25 ~ 1936.10.19

《광인일기》,《아큐정전(阿Q正傳)》등을 쓴 중국 문학가 겸 사상가. 특히 대표작 《아큐정전(阿Q正傳)》은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며 후에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統一戰線)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空轉)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881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초명은 장서우[樟壽]였고 루쉰은 그의 필명이다. 그는 비교적 유복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가 부정부패로 하옥(下獄)되고, 아버지가 병사(病死) 하면서 잇달은 불행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이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1898년 그는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에 입학하였고, 이후 광무철로학당(礦務鐵路學堂)에서 공부하며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고분학원[弘文學院]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강의중에 상영하는 영상에서 중국인이 처형되는 장면을 보고 격분하여 학교를 자퇴하였다. 그는 의학공부를 단념하고, 동경에 머물면서 외국의 소설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이때 그는 중국국민성 개조를 위한 문학을 지향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域外) 소설집》을 공동으로 번역하여 출간하는 한편, 망명 중인 중국의 혁명운동가이자 유학자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그만두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중화민국 신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탁본(金石拓本)의 수집, 고서(古書)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하여 가족제도와 예교(禮敎)의 폐해를 폭로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루쉰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어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의 단편 및 산문시집 《야초(野草)》를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특히 이무렵에 발표한 《아큐정전(阿Q正傳)》은 그의 대표작이자 세계적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창작 집필 외에도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北京]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의 교단에 섰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語絲社)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자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베이양군벌(北洋軍閥)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학생운동 3 ·18 사건으로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厦門大學] ·광둥 중산대학[廣東中山大學]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7년 가을에는 상하이의 조계(租界)에 숨어 제자인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創造社) ·태양사(太陽社)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흡수,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좌익작가연맹이 성립되자 지도적 입장에 서서 활약하고,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또 이 해부터 판화(版畵)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이 당시 그는 좌익작가연맹을 때문에 국민당에 수배되어 한동안 도피생활을 하였다.

1936년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그해 10월에 사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統一戰線)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空轉)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그의 저작은 일찍이 《루쉰전집[魯迅全集]》(20권, 1938), 《루쉰 30년집》(10권, 1941)으로 출판되었고, 중국에서도 상세한 주석을 가한 또 다른 《루쉰전집》(10권, 1956~1958)이 간행되었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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