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동아일보》, 1939년 11월 29일~12월 28일
- 책 속으로 -
미레이유 바랑의 얼굴을 나는 대여섯 장 째나 그리고 있었다. 결국 한 장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새로운 목탄지를 내서는 또다시 그의 얼굴의 뎃상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내일부터 봉절될 영화 「망향」의 석간 신문지 속에 넣을 조그만 광고지의 도안이었다.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을 배경으로 바랑과 갸방의 얼굴을 그리고 그 속에 출연자의 스태프와 자극적인 광고문을 넣자는 고안이었으나 광고문은커녕 나는 바랑의 얼굴에서 그만 막혀 버린 것이 좀체 운필이 뜻대로 되지는 않아 마음이 초조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여배우 얼굴 하나 가지구 벌써 몇 시간을 잡아먹나. 얼른 끝을 내야 인쇄소에 넘겨 저녁때까지에 박아내지 않겠나.”
맞은편에 책상을 마주대고 앉은 동료는 나의 궁싯거리는 양이 보기 민망해서 기어코 자리를 일어선다.
“웬일인지 모르겠네. 그리다 그리다 이렇게 막힐 법은 없어. 고 눈과 코가 종시 말을 들어야 말이지.”
동료는 등뒤로 돌아오더니 어깨너머로 내 그림을 바라보며,
“자넨 벌써 바랑과 연앤가.”
“연애라니.”
“암, 연애구 말구. 그렇게 망설이는 자네 마음이 심상치 않어.”
쓸데없는 말을 걸어온 까닭에 결국 망쳐 버리고야 말았다.
“연애!”
◈ 이효석 단편소설 모음집 - 수록 (3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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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명언 모음집 - 천개가 넘는 귀중한 명언이 있습니다. (두고두고 읽는 명언)
이효석(李孝石, 1907-1942) :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 1925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이 선외가작(選外佳作)으로 뽑힘. 1928년 《조선지광》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한 후 정식으로 문학 활동 시작. 초기 경향문학 작품들을 발표하다가 구인회 활동을 전후로 점차 향토적이고 이국적인 성향으로 변모. 「여인(旅人)」, 「나는 말 못했다」, 「달의 파란 우숨」, 「노인의 죽엄」, 「주리면」, 「도시와 유령」, 「행진곡」, 「기우」, 「노령근해」, 「깨뜨려지는 홍등」, 「추억」, 「상륙」, 「대종공론」, 「마작철학」, 「북극사신」, 「초설」, 「출범 시대」, 「오후의 해조」, 「시월에 피는 임금꼿」, 「돈」, 「수탉」, 「마음의 의장」, 「일기」, 「수난」, 「계절」, 「성수부」, 「성화」, 「뎃상」, 「산」, 「분녀」, 「들」, 「천사와 산문시」, 「인간산문」, 「석류」, 「고사리」, 「모밀꽃 필 무렵」, 「낙엽기」, 「성찬」, 「인정」, 「마음에 남는 풍경」, 「쇄사」, 「삽화」, 「개살구」, 「겨울 이야기」, 「막」, 「공상구락부」, 「부록」, 「소라」, 「해바라기」, 「가을과 산양」, 「성서」, 「산정」, 「황제」, 「향수」, 「일표의 공능」, 「여수」, 「합이빈」, 「薊の章」, 「라오코왼의 후예」, 「산협」, 「풀닢」, 「일요일」, 「서한」, 「만보」 등 단편소설.
(한국현대장편소설사전 1917-1950, 2013. 2. 5., 고려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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