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桓檀古記]
'한단고기'라고도 한다. 한국 상고사에 대한 책으로서 최근에 출판된 책이다. 이 책의 소개서에 의하면, 환단고기는 1911년에 계연수(桂延壽)가 편찬하였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네 가지 사서, 즉 삼성기(三聖記), 단군세기(檀君世記), 북부여기(北夫餘記), 태백일사(太白一史)를 하나로 묶어 편찬한 것이다. 한국사의 상고 및 고대의 역사, 신앙, 풍습, 정치, 경제, 예술, 철학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책의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삼성기(三聖記)〉는 신라의 승려인 안함로(安含老)와 그리고 행적이 확실치 않은 원동중(元董仲)이 쓴 것을 각각 상권과 하권으로 구분하여 합친 것으로, 환인(桓因)과 환웅(桓雄), 단군(檀君)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시발인 환국(桓國)시대의 환인으로부터 7세 단인(檀因)까지 3301년의 역사와 신시(神市)시대의 환웅으로부터 18세 단웅(檀熊)까지 1565년의 역사를 압축한 것이다. 하권에는 신시 역대기가 덧붙여 있다.
〈단군세기(檀君世記)〉는 고려시대인 1363년(공민왕 12)에 행촌(杏村)선생 문정공 이암(文靖公 李?)이 저술한 책으로, 아사달(阿斯達)에 도읍하여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한 단군님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1세 ‘단군왕검(檀君王儉)'으로부터 47세 ‘단군고열가(檀君古列加)'까지 2096년 동안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편년체로 요약 정리하였다.
〈북부여기(北夫餘記)〉는 고려말의 학자인 휴애거사(休崖居士) 범장(范樟)이 찬술한 책이다. ‘상권’은 1세 해모수(解慕?)로부터 4세까지 163년을 담았고, ‘하권’은 5세 ~ 6세의 51년간을 담았는데, 5세는 북부여가 쇠하여지자 졸본(卒本)으로 내려와 다시 즉위하고 동명(東明)이라고 하였다 하니, 이가 곧 국사학계에서 말하는 고구려 시조로 여겨진다. 이어서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는 시조 해부루로부터 108년간을 담고 있다. 부여로부터 고구려로 변모하여 이어지는 부분이 담겨있다.
〈태백일사(太白一史)〉는 근세조선 연산군과 중종 때의 학자인 이맥(李陌)이 편찬한 책으로, 《환단고기》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역사의 원시국가 시대로부터 고려에 이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엔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환국본기(桓國本紀)·신시본기(神市本紀)·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가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삼한관경본기에는 마한세가(馬韓世家) 상·하와 번한세가(番韓世家) 상·하가 담겨있다. 특히, ‘소도경전본훈’은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실어, 우리 민족의 정통적 종교와 철학 및 문자를 소개하고 있다.
《환단고기》 말미에, 이유립(李裕?)의 청을 들어 책의 정서를 한 오형기(吳炯基)가 쓴 발(跋)문에는, 우리의 역사가 매우 유구함을 강조하고, 기자(箕子)를 부정하고 있다. 또한 신성시되는 우리의 역사를 조선의 유생(儒生)과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등한시하고 있으며, 서양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우리 것을 알지 못함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고 있음을 개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환인, 환웅, 단군 시대를 세부적으로 다루어 실사화하였고, 그 후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역사는 대외적으로도 크게 팽창한 우수하고 장구한 역사로 인식토록 하고 있다. 이는 외세의 침략기에 나타나는 애국심의 발로로 보아지며, 오늘날 한국사학계에서 정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환단고기》가 세상에 출현한 것은 최근의 일인데, 편찬자 계연수는 제자 이유립에게 경신년(1980)에 이 책을 공개하도록 부탁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1979년에 영인된 뒤, 일본인 카시마 노보루[鹿島昇]라는 사람이 일역을 하고 그 원문을 게재하면서부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오형기가 발을 쓴 것이 1948년(신시개천 5846년이라고 기원을 밝힘)이다. 그렇다면 《계연수-이유립-오형기》 3인(대)을 거치면서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애국적 저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책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왜 70여년이란 긴 세월동안 공개하지 않았을까? 일제시대 일본의 탄압을 피해 숨겨두었다가, 언젠가 독립되는 날 공개하려는 의도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나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4가지의 원사료를 사용하였다고 하지만 삼성기와 같이 원시·상고사를 그토록 자세하게 기술한 근거는 무엇이며, 고대사에 나오는 역사 용어가 상고사에도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보다 강한 의문은, 근거가 있는 것처럼 자세하게 서술하여 조작한 위서(僞書)가 아닐까? 등이다.
그러나 일부 민간 사학자들은 이를 깊이 신봉하기도 한다. 이런 논쟁은 역사적 사실(史實 historical fact)의 진위여부와 함께 앞으로 더 고찰하여야 할 부분이다. (두산백과)
계연수 (桂延壽) ? ~ 1920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편찬자로 알려진 사학자. 단군사상 연구와 역사의식 회복을 위해 창설된 단학회의 2대 회장을 지낸 뒤 1911년에 단군조선을 대통일 민족국가로 서술한 《환단고기》30권을 편찬하였다.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운초(雲樵)·일시당(一始堂)이다. 한말에 민중계몽운동을 한 이기(李沂)의 문인으로,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國務領)을 지낸 이상룡(李相龍)의 지휘 아래 참획군정을 맡기도 하였다.
단군사상을 연구하고 역사의식 회복을 위해 이기와 나철(羅喆)이 창설한 단학회(檀學會)의 2대 회장을 지낸 뒤 홍범도(洪範圖)·오동진(吳東振)의 지원을 받아 1911년에 《환단고기》 30권을 편찬하였다고 전한다.
《환단고기》는 신라의 승려 안함로(安含老)와 원동중(元董仲)이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의 역사를 서술한 《삼성기(三聖記)》, 고려시대의 문신 이암(李喦)이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단군세기(檀君世記)》, 고려 말의 학자 범장(范樟)이 북부여의 역사를 서술한 《북부여기(北夫餘紀)》, 조선시대의 학자 이맥(李陌)이 한국(桓國)·신시시대·고려에 대한 내용을 다룬 《태백일사(太白逸史)》 등을 한데 묶어 단군조선을 대통일 민족국가로 서술하고 있다.
이후 만주(滿洲;지금의 중국 둥베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 일본 밀정에게 살해되었다고 전한다. 제자 이유립(李裕岦)에게 다음 경신년인 1980년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하라는 말을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유립은 1979년에 이 책을 영인하였다.
한편, 그가 편찬하였다고 하는 《환단고기》에 대하여 역사학계에서는 위서(僞書)로 간주한다. 또 수안(遂安)을 단본으로 하는 계씨 족보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점, 그의 행적을 뒷받침할 만한 기록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그가 실존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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