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신경과 의사,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다
-아홉 달 간의 치열한 투병 끝에 다시 일어서기까지
자신의 분야에 국내 최고라 불리는 의사가 있었다. 미국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교수의 지도 아래 연수를 마쳤고, 외국인 과학자에게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 연구 기회가 주어졌으나 사양한 것은 그에게 더욱 소중한 고국이 있고 그를 기다리는 부모님이 계신 까닭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신경과 교수가 된 그는 1993년 같은 병원 신경외과 김현집 교수팀과 함께 태아의 뇌세포를 파킨슨환자의 뇌에 이식하는 수술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하고, 2000년 이후에만 10여 개 이상의 재단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 등 주목받는 의학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계에서 돌연 그의 이름이 사라진다. 주말이면 즐겨 오르던 남한산성 정상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졸도로 쓰러져 전신마비가 된 것이다. 사고 직후 의식이 돌아온 순간부터 그는 팔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냉철하게 진단하고, 남다른 정신력과 의학적 지식으로 주치의와 협력하여 스스로 진단하고 처치해 나간다. 오직 다시 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가 아홉 달 간의 투병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나는 서 있다』(부제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예담 펴냄)는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가 불의의 사고 직후,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투병의 나날을 구술하여 남긴 일기이다. 국내 최고의 신경과의가 자신의 전공 분야인 신경마비 증세로 꼼짝없이 병상에 누운 처지가 되어 남긴 병상의 기록.
눈물이나 억지 감동은 없다. 환자가 쓴 투병기라기보다는 담당의가 쓴 진료 기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치료와 회복의 과정을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각에서 추적하는 까닭이다. 몸은 마비되었지만 이성의 마비는 허락지 않는다. 스스로 짐승에 비유할 정도로 살아남겠다는 무서운 집념과 생존본능 그리고 환자인 동시에 의사로서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끊임없이 분석하는 고도의 지성은 읽는 이에게 슬픔이나 연민이 아닌 전율과 섬뜩함마저 안겨준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상황을 차가운 이성과 강렬한 의지로 압도하는 경이로운 정신력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1987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1991년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 신경과 전공의를 수료, 1993년 콜롬비아대학 신경과의 파킨슨병 분야 전임의를 거쳤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파킨슨병과 이상운동질환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동아일보 선정 베스트 닥터에 뽑힌 바 있으며 1999년에는 서울대학병원 임상의학 연구소 선정 제1회 ‘젊은 연구자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의 파킨슨센터 책임자, 서울의대 의료정책실장, 대한신경과학회 기획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가정의학(신경성 질환: 파킨슨병)』(2001), 『Movement Disorder Emergencies』(2004), 『신경과학(Neurology)』(2005) 등이 있으며 파킨슨병과 소뇌 위축증 환자 및 가족을 위한 책자를 집필하였다. 이 책은 2004년 6월, 불의의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이후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치료와 재활 과정을 담은 병상 기록이다.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