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제왕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운명
10년 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0년 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면 남다른 노력 없이도 10년 만에 눈부신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 잘못 없이 바닥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도 있다. 10년 후 그들은, 당신의 처지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만약, 이 모든 것이 누군가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른 것이라면? 그리고 그 각본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신도 제왕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늘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선 자신의 아들 사르페돈의 죽음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그를 구하지 못한다. 인왕산 아래 왕기(王氣)가 있다는 말에 바짝 긴장한 광해군은 그곳에 살던 정원군의 땅을 빼앗아 그 터에 경덕궁을 지었지만, 결국 반정이 일어나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에게 왕위를 빼앗긴다. 그런가 하면, 조선 건국 초 복진이라는 점쟁이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대궐로 숨어 들어가 왕에게 목숨을 구해달라고 애걸하지만, 바로 그 무례한 행동 탓에 목숨을 잃는다. 이처럼 인간은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의 가윗날처럼 예리하고 가차 없는 결단을 피할 수 없다.
부자가 되는 것도, 천생연분을 만나는 것도, 과거에 합격하고 출세길에 오르는 것도 모두 운명이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운명설화는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확인할 수 있을까?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어렵사리 알게 된 자신의 운명과 미래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면 더 나은 운명, 더 나은 미래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1973년 서울 출생으로 서강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옛날이야기를 비롯해 오래된 기록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 옛날이야기 가운데 소화(笑話; 우스개)에 대한 연구논문,「문헌 소화의 구성과 의미 작용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서강대 박사학위논문, 2004)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샘터, 2006)가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전임 연구원으로 있으며, 조선시대의 삶과 정서를 돌아보면서 역사, 문학, 철학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들어가는 말: 신의 영역, 인간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