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만나는 황인숙 시인의 착한 에세이
황인숙 시인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과 야단스럽지 않은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은 에세이(이숲 우리 시대 우리 삶 시리즈 2권). 3년 만에 선보이는 책에서 시인은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길고양이들에 보내는 측은한 시선을 전한다. 아울러, 시인이 즐기는 산책길 이야기, 과거 해방촌이라 불렸던 곳에 사는 시인의 가난하고 친근한 이웃 이야기, 그리고 그간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을 소개한다. 삽화는 문화일보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정학이 그렸다. 글도, 그림도, 책의 재질이나 모양도 모두 모두 착한 책이다.
고양이를 부탁해
시인의 고양이 사랑은 남다르다. 그러나 오해 없기를. 시인이 사랑하는 고양이는 예쁜 장난감처럼 만들어놓은 외국산 고급 고양이가 아니다. 거리에 세워진 자동차 밑에서 밤이슬을 피하고, 사나운 사람들의 폭력에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떠는 길고양이들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길고양이 한 마리라도 살려서 새 주인을 찾아주려고 동분서주하는 시인을 보고 한 친구는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력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마땅하다’고 강변한다. 그 말에 시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데 친구야, 이걸 말하고 싶어. 가령 잡지에서 매월 2만 원이면 지구촌 오지의 어린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안내를 보고 후원신청서를 보낼 확률은,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을 것이라는 것. 이 역시 고양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고양이한테도 돈을 쓰는데 사람한테 안 쓴다는 건 엄청난 가책을 받게 되는 일이거든.’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데뷔했고, 동서문학상(1999)과 김수영문학상(2004)을 수상했다.
1부. 고양이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