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못 잊을 어머니 손맛
2010년 〈매일신문〉에 ‘구활의 고향의 맛’이라는 칼럼을 연재하는 필자가 미발표 원고를 포함하여 출간한 음식 에세이. 빈식, 채식, 육식의 3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필자는 이제 세상에 없는 어머니의 손맛처럼 그립고 안타까운 77가지 음식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산과 들과 내에 나가 놀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조리해 먹었던 꿀맛 같던 음식들, 수년간 주간지에서 와일드 쿠깅(wild cooking)을 취재·소개한 전문 기자답게 채소류와 육류 재료를 더욱 맛있게 조리, 요리해 먹는 방법도 소개한다. 때로 뭉클하고, 때로 웃음을 자아내는 음식 관련 일화들이 필자가 직접 그린 오밀조밀한 삽화만큼이나 읽는 맛을 돋운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음식들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 올망졸망 다섯 자녀를 먹여 살리느라 동이 트기도 전에 밭으로 나가시던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도 모르고, 철부지 활이는 헤진 고무신짝을 끌고 강으로 산으로 쏘다니기 바쁘다. 가재, 피라미, 모래무지도 잡아먹고, 개구리, 논고동, 다슬기도 잡아먹는다. 수박, 복숭아, 감자 서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참 먹성 좋은 학창 시절엔 꿀꿀이죽 한 그릇, 국화빵 몇 개가 그토록 사먹고 싶어 ‘영한사전’을 사야 한다며 어머니에게서 돈을 타내자마자, 이번에는 ‘콘사이스’를 사야 한다고 또 돈을 타낸다. 나중엔 ‘피타고라스 정리’도 ‘인수분해’도 모두 책의 제목이 되어 가난한 어머니의 주머니를 홀쭉하게 만든다. 철없는 활이의 잔꾀를 어머니는 모르고 계셨을까.
중학 입시를 치르고 어머니와 들렀던 시장 안 곰국 집. 곰국을 달랑 한 그릇만 시키신 어머니 자신은 맨밥만 몇 술 뜨다 말고 숟가락을 놓으신다. 보다 못한 곰국 집 주인은 국물에 밥을 한 술 더 말아 어머니에게 내밀며 어머니의 가난을 위로한다. 걸신들린 듯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던 활이도 모진 가난에 가슴에 상처를 받아 그날 이후로 다시는 곰국을 먹지 않는다.
진달래꽃도 식량이 되었던 궁핍했던 시절, 활이 오빠에게 먹을거리로 진달래꽃을 주려고 수줍게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던 옆집 태분이, 주린 배를 달래느라 술 지게미를 얻어먹고 취해 자주 쓰러지던 나뿐이, 양공주 누나 때문에 따돌림당하지 않으려고 미군 시레이션을 들고 나와 또래에게 돌리던 히데오… 가난했던 필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가난한 음식에 얹혀 감동적으로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어린 시절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남았을 뿐,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내 어린 날은 궁핍과 허기의 연속이었지만 가난이 웃음까지 앗아가지는 않았다. 행과 불행은 재물의 과다가 아닌 기쁨의 유무로 결정된다면 웃음은 행복열차의 출발점에서 울리는 팡파르에 다름 아니리라.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행복했고 웃음소리가 호박을 업고 있는 낮은 돌담을 넘어 고샅에 깔렸다.”
경북 경산 하양에서 태어나다. 매일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내다. 에세이집 『그리운 날의 추억제』 『아름다운 사람들』 『시간이 머문 풍경』 『하안거 다음날』 『고향집 앞에서』 『바람에 부치는 편지』 『선집 정미소 풍경』 『선집 어머니의 텃밭』 등을 출간하다. 현대수필문학상, 대구문학상, 금복문화예술상, 원종린문학대상 등을 수상하다. 방일영문화재단, 한국언론재단,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 대구경북연구원 등에서 저술지원을 받다. (email. 9hwal@hanmail.net)
貧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