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삶, 돈, 사랑 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욕심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이유에서의 자살보다는 정치적인 이유, 체제 저항의 수단, 또는 절개를 지키기 위한 이유에서 죽음의 길을 택한 자살이 많았다. 대게 조선의 집권층인 양반 사대부들은 정치적으로 패배하거나 역모에 실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당쟁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끊기도 했다. 또 힘없는 백성들은 체제 저항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했으며, 여성들은 관리들의 착취에 저항하고 정절을 지키려고 세상을 등졌다.
저자는 ‘왕실을 둘러싼 자살, 정치적 패자들의 자살, 여인들의 자살, 전쟁터에서의 자살, 권력에 저항한 약자들의 자살’로 구성해 비극적인 조선시대 자살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왕실이나 정치적 패자들의 죽음보다 여성들의 죽음과 전쟁터에서의 죽음 그리고 민초들의 죽음을 재조명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신숙주의 부인 윤씨의 자살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지만 남편 신숙주가 성삼문 일행을 배반하고 살아남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또 군역으로 인한 고통으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죽음, 조선 초기에 중국에 바쳐야 했던 공녀들의 자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공녀로 차출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높았고 돌아온다 하더라도 시집을 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중국으로 가지 않으려 통곡하다 죽거나 구덩이에 몸을 던진 것이다.
한 시대를 이끈 왕실을 둘러싼 자살뿐 아니라 이처럼 민초들의 자살까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조선시대 자살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또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혹은 잘 드러내지 않았던 비극적인 자살 사건을 통해 조선시대의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일면을 알아보고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이면서 사회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살 뒤에 가려진 사회문제를 통해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고 아직도 의문으로 남은 조선시대 자살에 대해 낱낱이 파헤친다.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한국사 전공)를 받았다. 한국방송대학교 강사,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저술과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중세와 근세사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한국 중세의 천거제도』『한국 근대 관리임용 연구』『한국사의 새로운 인식』『공녀』『중세시대의 환관과 공녀』『조선시대 천거제도 연구』『한국 관리등용제도사 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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