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메추라기와 뻐꾸기
: 생존을 위해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생계를 위해 비굴해져야 하고, 굴욕마저도 감수해야 하는 민중의 삶을 보는 듯하다.
허씨 내외가 세든 문간방은 주차장을 고쳐 만든 장소다. 다른 집보다 월등히 싼 대신 말하자면 행랑아범 노릇을 감수해야 하는 더부살이다. ‘삐이’하는 벨소리를 듣고 나가보면 전기검침원에서부터 신문배달부, 세일즈맨, 할렐루야 전단지 돌리는 여자들이 서 있다. 수시로 벨을 눌러 호출하는 주인 노파는 지저분하다고 마당에 널어놓은 기저귀용 빨랫줄을 싹뚝 잘라놓기도 한다. 결국 허씨 내외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 집을 탈출한다.
이사를 한 뒤 주인 노파를 만나러 찾아간 허씨는 자기 대신 문간방에 세든 사람과 멱살잡이를 하며 싸움을 한다. 화해술을 마시는 마지막 몸부림이 눈물겹다. 그런 허씨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고통스럽지만 비루하지 않게 삶을 지켜내고 싶은 아웃사이더의 자존감이 깔려 있다.
도끼로 발등 찍기
: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위치에 서 보아야 한다. 게임에 빠진 아들보다 더 게임에 빠져버린 아버지의 변명이 밉지 않다.
“요게 말이야. 애들 게임이라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고. 이건 스토리가 있고 이벤트가 있어. …… 거기다가 휴머니티도 들어 있지, 주제도 살아 있지. 이건 소설이야. 그것도 장편 대하소설이라니까.”
게임 예찬론자가 된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어떤 생각을 할까?
미꾸라지
: 어느 조직에나 있게 마련인 지 대리의 행태가 눈에 잡힐 듯 그려진다. 옆에 있으면 면전에 대고 한 마디를 퍼붓고 싶을 정도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할 수 없는 직장인의 ‘점심값’에 관한 얘기다. 지 대리는 열두 시가 되기 바쁘게 주변 사람들을 부추겨 식당 문을 들어선다. 먹는 속도도 빨라 남들이 반쯤 그릇을 비울 때쯤이면 밥그릇을 싹 비우고 이쑤시개를 빼들어 이빨 사이에 낀 찌꺼기를 파내서 식탁가장자리에 닦는다. 식당 문을 나설 때는 남들이 식사 값을 치를 때까지 끈질기게 버틴다. 버텨내는 그의 행위들이 차라리 눈물겹다.
빨간 털모자
: 구두 수선을 하는 아버지 덕보 영감과 빗나가기만 하는 아들 창호 이야기다. 재수를 하면서 공부는 뒷전인 창호를 동네에서 모두 손가락질을 하지만 덕보 영감은 끝까지 믿어주고 신뢰를 잃지 않는다. 창호는 아버지의 사랑에 차츰 물들어간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대학등록금을 마련한 통장을 건네받으며 창호는 엇나가기만 하는 생활을 청산한다. 거기에는 빨간 털모자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문화방송 전쟁문학상 장편소설부문 수상. 현재 숭의여대 미디어 문예창작과 교수. 작품집으로『북극성으로 가는 문』(실천문학사),『까마귀의 섬』(작가),『사랑이여 영원히』(에듀북스),『베트남, 베트남』(작가),『내 어릴 때 꿈은 거지였다』(사계절) 등이 있다.
메추라기와 뻐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