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중재자로 살아온 정관용의 곧은 목소리!
“최대한으로 자제했던 정관용의 목소리를 우리가 경청할 때이다.” -신영복(성공회대 석좌교수)
말 많은 사회다.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언론이 한 차례 흔들고 나면 인터넷 세상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여기도 논객, 저기도 논객을 자처한다. 언론인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불특정 다수에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으니 열린 사회라 할 만하다. 저마다 스스로 생각하는 갈등의 원인을 앞다투어 분석하고, 표현하는 데 골몰한다. 자연히 말과 글이 넘치는 이런 과정에서 진정한 ‘소통’은 과연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 생각과 주장을 ‘내지르는’ 데 익숙하여 다른 입장, 다른 견해를 경청하는 데 서툴고 비판이나 지적의 목소리에는 공격을 당한 것마냥 발끈하고 보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소통이 또 다른 사회적 논의의 주제가 된 지 오래다. ‘불통정부’, ‘불통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말도 이런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대한민국의 소통 부재의 단면은 TV와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많은 사람들이 토론 프로그램을 두고 ‘배운 양반들이 나와서 싸움만 하니까 보지 않는다’, ‘하나마나 한 소리들만 한다’, ‘결론도 못 내리고 제 할 말만 한다’고들 평한다. 그야말로 불통의 현장인 셈이다. 바로 이 불통의 현장에서 사회자로서 대한민국 최다 진행 기록(2000여 회)을 가진 시사평론가 정관용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신간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부제 : 시대의 중립을 선언한 정관용의 소통 제안, 위즈덤하우스 펴냄)는 팽팽한 양 극단의 논리 한가운데서 1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토론을 조직해 온 저자가 우리 사회에 소통이 부재한 원인과 역사, 문화, 정치적 한계를 특유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분석ㆍ진단하고, 건강한 공동체의 미래를 제안하는 명쾌한 소통 교과서이다.
우리 사회 소통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소통해야만 하는가?
토론현장에서 항상 답답함을 느꼈던 저자이기에 소통이 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해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생방송 토론현장에서 저자는 출연자 두 사람을 각각 ‘교수’와 ‘박사’라고 불렀다가 곤혹을 치른 일이 있다. 대학 강의를 하지만 정식으로 교수 임용이 되지 않은 출연자를 ‘박사’라고 불렀던 것인데 ‘교수’ 측에서 ‘나도 박사인데 왜 저 사람만 박사라고 부르냐’며 항의한 것이다. (본문 73p~74p 참고)
저자는 이 사건을 출연자와의 단순한 의견 충돌로 치부할 수 없었다. 호칭 문제 하나를 놓고도 판단 기준이 다른 우리 사회 불통의 단초를 발견한 일화였다. 앞서 언급한 호칭과 같은 사소한 문제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그 말에 담긴 의도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일이 개념 정의부터 다시 하고 대화하지 않으면 온갖 예기치 않은 오해가 생기기 쉽다.
서로 ‘소통’하기는커녕 상대방을 ‘소탕’하려는 태도를 저자는 지적한다. 국회에서는 몸싸움이 되풀이되고 파업 현장과 거리 집회에서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물리적 충돌이 반복된다. ‘옳다 그르다’의 잣대, 선악의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기 때문에 절충이 없다. 강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것, 상대 쪽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배신이고 기회주의적인 행태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소통의 싹을 자른다. 대한민국 소통에 관해 너도나도 비관적인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왜 굳이 소통에 관한 책을 내놓았을까? 어떤 신묘한 해법이 있다는 것일까?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 사회가 왜 소통이 안 되는지, 왜 소통을 못하는지 그 이유부터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 왕조부터 일체 치하를 거쳐 고도 산업화된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문화?정치계의 흐름을 통해 소통이라는 주제를 객관적이고도 날카롭게 분석하는 저자의 논리가 설득력 있다. 소통은 발전, 진보와 맥을 같이하는 우리 사회의 숙제이므로 진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차분하고 일목요연한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 소통 문화에 관한 명쾌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1962년 충남 천안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국민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인을 꿈꾸었고 대학에 입학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문학연구회’ 동아리였다. 연극반 활동으로 연극무대에 서는 등 낭만적인 문예기질을 키우는 한편 사회대 학생회장을 맡아 학생운동에도 참여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에는 재야 학술단체 활동을 병행하며 현대사회연구소에서 근무했고, 1980년대 말 CBS 라디오에서 시사해설을 맡았던 것을 계기로 방송 활동과 저술 활동을 시작하면서 시사평론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3년부터 2년간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고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에 전념하였다.
들어가는 글 우리는 소탕이 아닌 소통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