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희망 그리고 묵직한 감동이 빚어낸 사람들의 이야기, 그 세 번째
많은 사람들이 이제 고전적인 의미의 지역 공동체는 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역 곳곳에서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의 삶을 던져서 지역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들 부와 명예를 좇아 대도시로 몰려들고 있을 때, 그들은 도시를 떠나 지역에 자리 잡고 미래를 향한 큰판을 벌이면서 끊임없는 노력과 거침없는 도전으로 우리 사회의 굳건한 뿌리를 키우는 아름다운 에너지가 되고 있다.
우리 시대의 희망을 찾으러 나서는 지역 인물 탐구 시리즈 ‘희망을 여는 사람들’은 토종벌 총각 김대립, 김제 남포리의 상록수 오윤택에 이어 충북 옥천에서 「옥천신문」을 창간하여 풀뿌리 언론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오한흥을 세 번째 인물로 선택했다.
오한흥, 그는 누구인가
‘58년 개띠’로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른 살이 되던 해인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자 운명적으로 옥천 지국장을 맡았다. 길고 깊은 방황의 시절을 보내던 그는 당시 40여 명에 불과한 옥천의 「한겨레신문」 독자들과 만나면서 ‘사회적 개안’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풀뿌리 언론의 성공 모델인 「옥천신문」을 창간하고 키웠으며,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 옥천에서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성공시켰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입법전문 정치주간지 「여의도통신」 창간을 주도했으며, 이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안터마을을 보다 건강한 생태마을로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풀뿌리 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불어닥친 민주화 열풍은 지역 차원에서 지방자치제(1991년) 실시와 풀뿌리 신문(1988년)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이때 오한흥은 충북 옥천에서 1987년 청년애향회 창립을 주도하여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석 달에 한 번씩 ‘애향회보’라는 소식지를 발행해 회원 동정, 지역 소식을 실어 주민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다. 바로 「옥천신문」 창간을 위한 일종의 준비운동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1988년 12월 충남 홍성에서 「주간홍성」(「홍성신문」의 전신) 창간되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오한흥은 마침내 1989년 1월 30일 옥천지역신문 창간준비위원회를 꾸렸다. 정기간행물등록법상 필요한 자본금 5천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군민주(郡民株) 모금 방식을 도입했고, 이에 지역 주민 222명이 공동 출자에 참여했다. 당시 옥천은 YMCA나 농민회 조직조차 없었던 지역사회운동의 불모지였다. 이런 지역에서 신문을 발간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며, 창간을 해도 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옥천신문」은 그런 시각을 보기 좋게 누르고 주민들에게 당당하게 인정받는 신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은 「옥천신문」은 기자실 출입이 봉쇄되자 한판 싸움을 벌여 마침내 출입 허가를 받았고, 군청에서 홍보예산으로 사용하는 비용 가운데 공식적인 보도 사례비로 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촌지를 제공하는 등의 낡은 언론 관행과의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듯 차근차근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 「옥천신문」은 성역 없는 보도로 대외적인 인지도를 확보했고, 따라서 관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불가피한 전후 사정이 있다 해도 원칙을 어기거나 잘못을 했으면 독자에게 깨끗이 공개하고 사과하는 것이 「옥천신문」의 전통으로 뿌리내렸다. 무모할 정도의 결벽성과 투명성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외부의 정치적ㆍ경제적 압력으로부터 편집권의 독립을 지켜주는 든든한 원동력이 됐다. 왕도(王道)는 따로 없었다. 정도(正道)가 유일한 정답이었다. 「옥천신문」은 언론의 정도를 걸었다. 성역 없는 과감한 보도로 지역 권력 핵심 세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먼저 주민과 독자를 신문의 주인으로 섬겼다. 이렇게 주민과 독자 우선의 원칙은 철저히 지역에 기반한 기사 쓰기로 이어졌다.
기본에 충실한 합리적 제도로 「옥천신문」을 성공적으로 이끈 오한흥은 2005년 3월 31일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사퇴 의사를 밝히고 그의 후임으로 이안재 편집국장을 추천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경영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며 때를 기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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