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더 할애하고 싶지 않다.
대신 환대가 이뤄지는 공간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영국의 대표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이 전하는
차별과 소외를 방관하는 시대,
저항이자 치유, 해독제로서의 예술 탐독 전작 《외로운 도시》에서 올리비아 랭은 고독을 개인의 내밀한 문제로 시작해 사회적 소외로 확장하며 끝을 맺는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더 잰걸음으로 차별과 소외에 저항한 예술들을 살핀다. 그녀에게 예술은 환대의 공간이다. 점점 더 냉엄해지고 분열이 만연해지는 세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게 해줄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이 책에 담았다. 그녀의 유려하고 은유적인 문장들 속에서 장미셸 바스키아, 진 리스, 데릭 저먼, 존 버거 등 미술과 음악, 문학, 영화 전방위에 이르는 예술가들의 삶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전작들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던 그녀 자신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저항적 환경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던 젊은 시절의 경험담, 성소수자 가족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 등 자기 고백적 글이 책의 메시지에 울림을 더한다. 작가 특유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차별과 소외를 방관하는 시대, 저항이자 치유, 해독제로서 예술을 찬미하는 책이다. 위기의 시대,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제목을 ‘이상한 날씨’로 정했다. 길에서 전하는 날씨 예보를 상상했던 것인데, 그렇지 않아도 변덕스러운 세상이 점점 더 이상해져 가는 연유였다. 모든 위기와 재앙과 위협이 곧바로 다음 위기와 재앙과 위협에 묻혔다. (…) 예술이 지금 같은 위기의 시대에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예술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은 가능성을 향한 훈련의 장이다. 그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우리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온통 빛으로 벅차오르길 원하지 않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서문 ‘태양을 보라’ 중에서올리비아 랭은 소외와 고통 속에 살았으면서도 삶의 정수가 담긴 작품들을 남긴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줄곧 쫓아왔다. 이 책에서 그녀는 좀 더 직접적인 질문을 건넨다. “예술이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분열과 대립이 일상이 되고, 쏟아지는 폭로와 예측과 경고는 변화보다 무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현실 속에서 저자는 예술에 답을 구한다. 그녀가 비평가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의 표현을 빌려 말하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고 고발하려는 “편집증적 읽기”가 아닌 변화의 가능성을 엿보는 “회복적 읽기”다. “독을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찾는 데 더 집중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올리비아 랭은 정서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궁핍했으나 저항과 회복의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작품들을 탄생시킨 예술가들을 통해 그 가능성에 눈뜨게 한다.장미셸 바스키아, 데릭 저먼, 필립 거스턴, 헨리 그린…
우리의 세계관을 확장해줄 예술가들과 작품들재앙은 이미 벌어졌고 나쁜 놀라움은 결국 찾아오고야 말았다. 문제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상실과 분노와 함께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어떻게 하면 명백히 파괴적인 힘에 의해 파괴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쁜 놀라움’ 중에서저자는 <프리즈>에 연재한 칼럼 ‘이상한 날씨’를 중심으로 ‘위기 속의 예술’이라는 주제를 다룬 에세이들을 이 책에 담았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상한 날씨’는 혼란한 현실을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빗댄 것이다.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대규모 난민 유입 등을 시작으로 사회의 골이 깊어지기만 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불안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해줄 여러 예술가를 떠올린다.
‘국경 통제권을 되찾자’라고 쓰인 난민 수용 반대 포스터 앞에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영국 정치인의 사진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실리자, 저자는 헨리 그린의 《파티 가는 길》을 다시 읽는다. 휴가를 맞아 유럽 본토로 들어가려다 안개에 발이 묶인 상류층 영국인들을 그린 이 소설이 내뿜는 풍자는 예외주의의 초라한 본색을 확인시킨다. 21세기 한복판에서 벌어진 인종주의 행진을 보며 우스꽝스러운 KKK단 그림을 통해 희생자가 아닌 마비된 학대자들을 일깨우려던 필립 거스턴을 소환하기도 한다.
모든 행위가 인종차별에 맞선 공격이었던 장미셸 바스키아, 에이즈라는 절망 속에서도 황무지에서 정원을 꽃피웠던 데릭 저먼 등 예술가들의 삶 자체가 저항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들이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는지, 그들을 자극한 건 무엇인지, 왜 그런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좇으며 그들의 예술이 우리의 세계관을 어떻게 확장하는지 살핀다. 환경운동가, 성소수자의 가족, 난민과의 인터뷰…
저술가를 넘어 목격자이자 당사자로서의 저자의 목소리 이상한 애들. 엄마는 레즈비언이었고, 우리 세 식구는 포츠머스 근교의 볼썽사나운 신도시에 살았다. 모든 골목에 갈아엎은 벌판의 이름이 붙여진 곳이었다. 우리끼리는 나름 행복했지만 바깥세상은 얄팍하고 냉혹하며 영영 잿빛일 것처럼 느껴졌다. 정부에 의해 ‘외형상 가족’으로 찍힌 우리는 악의적인 법 아래에서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저주와 재앙을 목전에 두고 살았다. -‘그루터기에 남은 불씨: 데릭 저먼’ 중에서책은 비평과 대담 등 다양한 형식과 어린 시절의 독서로 거슬러 올라가는 다양한 시간대를 다룬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전면에 드러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간 외롭고 고립되었던 예술가들(《외로운 도시》), 알코올에 의존해야 했던 작가들(《작가와 술》)의 삶으로 가는 진입로가 되어주었던 그녀의 삶을 책 곳곳에서 직접 마주할 수 있다. 저항적 환경운동을 하며 벽지에서 나무로 어설픈 집을 짓고 홀로 살던 생활, 성소수자였던 어머니와 함께 존재를 부정당해야 했던 어린 시절, 25년간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난민을 인터뷰한 경험 등 자기 고백적 글이 책의 메시지에 울림을 더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부조리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열성으로 천착해왔는지, 더 많은 환대와 포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용기의 근원은 무엇이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내 옆자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환대를 촉구하다
그들 가운데는 너무나 풍요롭고 통찰력 넘치고 도발적인 작품 세계로 나를 영영 헤어날 수 없게 하는 시금석 같은 존재들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 데릭 저먼, 프랭크 오하라, 데이비드 워나로비치, 캐시 애커, 샹탈 조페, 앨리 스미스. 이들은 참여와 관용, 그리고 (존 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환대를 통해 내게 예술가가 되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준 사람들이다. -서문 ‘태양을 보라’ 중에서저자의 메시지는 ‘환대’라는 단어로 축약해볼 수 있다. 여기서 환대란 “근 10년간 다시금 득세한 분리와 분열과 거부를 초래하는 정치적 명령을 바로잡을 확장과 개방의 능력”이다. 그녀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섹슈얼리티, 젠더, 난민, 인종, 가난 등을 이유로 행해지는 모든 차별과 소외에 반기를 든다. 존 버거, 버지니아 울프, 데이비드 워나로비치 등 저자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좇다 보면 어느새 급진적이고 논쟁적인 이슈를 숙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도 될 것이다. 이는 곧 그것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든, 기분 전환을 위한 희극을 제공하는 것이든, 새로운 존재 방향을 위해 어둠을 더듬고 나가는 것이든” 현실과 호흡하는 예술이 될 것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올리비아 랭Olivia Laing
비평과 자기 고백을 넘나드는 특유의 유려한 글로 ‘논픽션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라고 평가받는 영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다. 제임스 설터, 리베카 솔닛 등 걸출한 작가들의 저술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예일대에서 제정한 윈덤캠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영국왕립문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작품을 조명한 첫 저작 《강으로To the River》(2011)와 술을 사랑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좇는 《작가와 술The Tripto Echo Spring》(2013)이 각각 왕립문학회 온다치상과 고든번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문화·예술 비평가로서 크게 주목받았다. 이후 세 번째 책 《외로운 도시The Lonely City》(2016)가 전 세계 12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17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며 영국을 대표하는 에세이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혼란한 시대를 제대로 목격하고 치유할 해독제로서의 예술에 주목한 《이상한 날씨Funny Weather》(2020), 모든 존재의 자유를 열망했던 논쟁적 인물들을 다룬 《에브리바디Everybody》(2021)까지 사유의 폭을 확장해왔다. 또한 첫 소설 《크루도Crudo》(2018)로 제임스테이트블랙 기념상을 수상하는 등 소설가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밖에도 <가디언> <뉴욕 타임스> 등 유수 매체에 기고하며 왕성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다.
서문: 태양을 보라
[에세이]
야생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고독의 미래
버려진 사람의 이야기
애도
파티 가는 길
살덩이
[예술가의 삶]
유령을 내쫓는 주문: 장미셸 바스키아
오직 푸른 하늘: 애그니스 마틴
미스터 귀재 따라잡기: 데이비드 호크니
신나는 세계: 조지프 코넬
뭐든 좋아: 로버트 라우션버그
협곡의 여인: 조지아 오키프
칼날 가까이: 데이비드 워나로비치
눈부신 빛: 사기 만
그루터기에 남은 불씨: 데릭 저먼
[이상한 날씨-프리즈 칼럼]
제때의 한 땀
초록 도화선
환영합니다
진짜 행세
와투시 춤을 추리라
나쁜 놀라움
이번 화재
시체 도둑들
시간이라는 음악의 춤
낙원
폭력의 역사
빨간 생각
막간
팬 아트
[네 여자]
힐러리 맨틀
세라 루커스
앨리 스미스
샹탈 조페
[스타일]
풀밭 위의 두 형상: 영국의 퀴어 예술
그래도 원한다면 공짜: 영국의 개념 미술
[서평]
《마음의 젠트리피케이션》: 세라 슐먼
《뉴욕파 화가와 시인: 한낮의 네온》: 제니 퀼터
《아르고노트》: 매기 넬슨
《아이 러브 딕》: 크리스 크라우스
《퓨처 섹스: 새로운 방식의 자유연애》: 에밀리 윗
《캐시 애커 전기》: 크리스 크라우스
《살림 비용》: 데버라 리비
《노멀 피플》: 샐리 루니
[러브 레터]
지구로 떨어진 남자: 데이비드 보위
음악 속으로 사라지다: 아서 러셀
환대의 의미: 존 버거
그들은 오직 꿈꾸네: 존 애시베리
미스터 파렌하이트: 프레디 머큐리
당신도 그렇다고 말해줘: 볼프강 틸만스
[대담]
조지프 케클러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