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탄생과 성장을 두 눈으로 목격한 팔십여 년의 세월,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 전하는 시련과 인고, 희망과 행복의 노래!
※ 본서의 판매로 발생되는 모든 인세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전액 기부될 예정입니다.
한민족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역사를 가진 나라도 드물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끊임없이 외세의 시달림을 받아 왔으며 우리 민족의 정서는 말 그대로 ‘한限’이 되었다. 특히 지난 100여 년간은 일제강점기와 육이오전쟁이라는 역사상 가장 커다란 비극을 겪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특유의 저력을 바탕으로 금세 밝은 미래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은 기적이라 불릴 만큼 눈부셨으며 이제 원조를 받지 않으면 버틸 수 없던 세계 최빈국은 일류 선진국을 목전에 둘 만큼 발전했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성장을 함께한 우리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 『문금용 회고록 ? 내 인생에 부치는 편지』는 그 위대한 국민들 중 하나였던 저자가 팔십여 년 평생의 인생역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왜 우리 민족의 정서가 한이 되었는지 절감할 수 있을 만큼 힘겨운 시기를 보냈던 우리 선조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대한민국의 탄생과 성장을 두 눈으로 목격해 온 노신사의 일생은, 우리 역사에 대한 생생한 증언은 물론 더 밝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후대에게 전하는 조언과 희망의 메시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누군들 힘겹지 않았을까. 먹을 게 없어 소나무 껍질에 연명하며 살아야 했던 나날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해 갖은 질병에 일찍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 저자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부유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늘 배를 굶주리고 큰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하고 일본의 패망과 육이오의 참극을 똑똑히 지켜보며 성장했다. 갖은 고생 끝에 결혼도 하고 우체국 정직원이 되었지만 더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혈병 때문에 세 명의 어린 자녀들을 떠나보내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위로 세 놈의 사내아이들을 거듭 날리고 나서부터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무료하게 한 해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태어난 애가 경호(사내아이)였다. 나에게는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새로운 삶의 의욕이 솟구쳤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것이 위 두 소원을 이루고 나면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하여 적어도 세 아이의 백혈병을 치료하여 죽음으로부터 구출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생각했다.”라는 는 저자의 바람은 백혈병어린이재단에 도합 7,100만 원을 기부하면서 이루어졌다. 평생 힘겨운 삶을 살아왔지만 타인의 삶을 위해 노년이 되어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귀감이 될 만하다.
지금 우리는 마음껏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은 물론 늘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풀 한 포기조차 온전히 자랄 수 없었던 황무지에 어떻게 아름다운 산과 들이 수놓이고 도시에 마천루가 들어서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 대한민국과 함께 울고 웃으며 나라를 위해 평생 삶을 희생해오신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마운 존재인지를,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길 기대해 본다.
문금용
<약력>
벽량초등학교 6년 졸업(1948년)
중앙통신학원, 중학강의록 독학(1948~)
군입대~제대(논산 제2훈련소 전반기 수료 후 육군본부 근무)
(1956년~1958년 의가사제대)
체신부, 광주전신전화국 임시 전보 배달원 취업(1961년 5월)
상부명령에 의한 무조건 퇴출(1961년 12월 31일)
순천우체국정규집배원으로 재채용(1962년 4월 2일)
체신부 내 행정직 전형시험에 합격(1962년 7월)
행정서기보(9급)로 벌교우체국에 보직 발령(1962년 8월)
위 9급~8급직으로 약 10년간 우체국 평직원으로 근무
행정주사보(7급)로: 약 5년 남짓, 우체국 계장, 분국장으로 근무
행정주사(6급)로: 동, 면 단위국장으로 약 20년간 근무
정년퇴직: 약 36년 근속하고 금구우체국장으로부터 퇴직
<상훈>
장관표창: 1호, 예금·보험 사업 농협으로 이관 공로(1977.5)
장관표창: 2호, 20년 공로 표창(1982.4)
장관표창: 3호, 30년 공로 표창(1993.4)
옥조근정훈장: 약 36년 무사고(1997.12)
<감사>
감사장: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7,100만 원 기부에 대한 감사(2015.2.16. 기부, 2015.8.12. 감사장)
서문 4
추천사 8
제1부 - 나의 뿌리
모계-나의 어머니 집안 이야기 16
부계-나의 아버지 집안 이야기 25
제2부 - 아버지의 결혼과 불행했던 생애
아버지의 제1부인인 남도댁(유동녀) 30
아버지의 제2부인 내끼멀댁 42
아버지의 제3부인 고부댁 46
광풍은 몰아닥치고, 나는 태어나고 52
새 성주와 동생들의 출생 54
죽음의 문턱까지 간 나의 발병 56
아버지가 발병 6개월 만에 요절하시다 61
고부댁의 개가 66
제3부 - 어머니의 홀로서기
통한의 시절을 회상하며 70
광주리장사 10년여 세월 73
우리 어머니의 효심과 수절 81
제4부 - 나의 10대
육리간이학교(4년제) 입학 86
일제의 학정과 양원 삼촌의 징병 89
금옥 누나의 결혼과 호적신고 94
815광복과 나의 벽량국민학교 제4학년 편입 96
금옥 누나의 죽음 98
벽량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강의록으로 독학을 시작 100
매형의 부름으로 상경 102
625 사변의 발발 106
의용군으로 끌려가다 110
구사일생으로 귀가하다 116
북진통일이 이루어지나 126
나의 학업열은 좌절되다 129
제5부 - 나의 20대
구직을 위하여 동분서주 132
지난 26사건에 의한 양원 작은아버지의 희생 135
상경하여 미군부대에 취직하다 139
적수공권으로 귀향하다 147
군에 자원입대하다 150
제6부 - 나의 결혼과 아내
나의 결혼과 뼈아픈 갈등 168
아내의 처녀시절 가정환경과 결혼 후의 괴팍한 성격 174
아내에게도 장점은 있다 180
제7부 - 나를 도와준 누이동생 점옥이
결혼 전에 나를 도운 점옥이 184
누이동생 점옥이의 결혼 190
고난 극복의 명수 점옥이 192
제8부 - 천신만고 끝에 학수고대하던 취직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전배원 임시직에 취직은 했으나 198
하루살이 임시직 전배원에서 퇴출되다 205
복직과 더불어 대망의 정규직이 되다 210
전형시험에 합격, 행정서기보로 발령받다 214
제9부 - 애환 속의 10년 세월
첫애를 사산하다 222
우체국에 취직하고 셋째 놈도 생후 보름 만에 잃다 224
어머니의 녹내장 수술 228
종호의 발병과 죽음 230
경호의 탄생 239
어머니의 발병으로부터 운명까지 246
제10부 - 보람 있었던 일
부부간통사기단의 함정에서 업무계장을 구출하다 254
두 사촌남매의 취직과 신 국장의 추문 해결 263
두 번째 들어간 감곡우체국 271
두 번째 금구우체국에 들어가 있었던 일들 280
제11부 - 재직 중 고통스러웠던 일
익산우체국 업무과장 이옥(이창)의 비리 288
산외우체국의 화재사건 295
이리전신전화건설국 보급계장으로의 전보 299
부량우체국에서 고통을 당하다 306
글을 마치며 314
자손들에게 남기고픈 인생의 지혜 이야기 318
출간후기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