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는 사실상 당시 2류 공업 국가인 독일의 상공업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론가다. 대표작인 이 책에서 그는 민족경제의 입장에 서서,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고전경제학의 교환가치 이론을 비판한다. 영국 고전학파 경제학이 무역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영국에 유리하게 다른 나라들을 이론적으로 기만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이에 속지 말 것을 강조한다.
리스트가 내세운 것은 역량(Kraft) 이론이다. 역량은 경제 활동의 잠재적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민족의 부는 노동이 아닌 이런 생산 역량에 의해 증진된다고 본다. 장기적인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목적에서는 상당히 타당한 개념이다.
또한 리스트의 민족경제학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보호 체제를 강조하고, 제조업이 잘되어야 이에 따라 국내 농업도 발달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즉 리스트가 말하는 보호 체제는 농산물 수입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 제품의 수입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를 수입 대체 공업화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1789년 독일 남부의 로이틀링겐에서 피혁 가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820년 뷔르템베르크 주의 입법부에 의원으로 선출되어 지방자치의 확대와 사법 절차의 개혁을 주장하다 공공 안전을 저해한다는 죄목으로 10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고, 1822년에 해외로 망명했다. 1824년에 독일로 돌아오자마자 체포되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고 약속하고 석방된 후 1825년에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농장을 경영하기도 했고, 펜실베이니아에서는 경질탄 탄광 개발을 발견 단계에서부터 성사시켰으며, 철도 건설 사업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치경제 문제에 대한 예리한 눈을 얻었고, 애덤 스미스 학설의 보편적 타당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공업화 도상에 있는 국가에게는 보호관세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미국 정치경제학 개론≫(1827)을 저술해 자신의 견해를 체계화했다.
1823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와 그 보답으로 독일 주재 미국 영사가 되어 귀국했다. 미국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독일 철도 체계를 조직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실제 철도 가설에도 착수해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재정적인 난관에 빠지게 되어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갔다. 프랑스에서는 학술원의 논문 공모에서 그의 두 번째 저서가 되는 ≪정치경제학의 자연적 체계≫라는 글을 써 3위 안에 들었다. 이는 미국에서 저술한 ≪개론≫을 발전시키고 역사적인 부분을 더한 것이다. 그 후 독일로 돌아와 주저서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1841)를 집필했다. 1843년부터는 ≪관세연맹지≫를 발간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전파해 독일에서 여론 형성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정 압박과 계획의 좌절로 절망에 빠져 1846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머리말
서론
제1권 역사
제1장 이탈리아인
제2장 한자인
제3장 네덜란드인
제4장 영국인
제5장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
제6장 프랑스인
제7장 독일인
제8장 러시아인
제9장 북아메리카인
제10장 역사의 가르침
제2권 이론
제11장 경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제13장 사업 운영의 민족적 분업과 민족적 생산 역량의 연합
제14장 사경제학과 민족경제학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제16장 인민경제와 국가경제, 정치경제학과 민족경제학
제17장 제조업 역량과 인적·사회적·정치적·민족적 생산 역량
제18장 민족의 제조업 역량과 자연적 생산 역량
제19장 민족의 제조업 역량과 도구적 역량(물적 자본)
제20장 제조업 역량과 농업 이해
제21장 제조업 역량과 상업
제22장 제조업 역량과 해운업, 해군과 식민지화
제23장 제조업 역량과 유통 수단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제25장 제조업 역량과 생산과 소비 자극 수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