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중심의 체제를 비판하고 풍자한 희극!
프랑스 작가 보마르셰의 사회풍자 희극『피가로의 결혼』. 귀족 중심의 구체제를 비판하고 프랑스혁명을 예견한 작품으로, 특권계층의 권력 남용을 이겨내고 사랑을 쟁취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5막 3장에 등장하는 피가로의 긴 독백은 프랑스혁명 직전 당시의 구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하다.
이발사였다가 알마비바 백작의 하인이 된 피가로와 백작의 시녀 수잔느의 결혼 이야기가 펼쳐진다. 애정이 식은 백작과 백작부인 사이에서 수잔느와 피가로는 부인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하녀를 유혹하는 백작의 바람기를 물리치고 부부가 된다. 바람둥이 귀족과 재치 넘치는 하인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모습과 계급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 희극은 <세비야의 이발사>의 속편으로서 1784년 극장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에도 자주 상연되고 있으며, 모차르트는 이 희극을 모티브로 동명의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작가는 한가한 귀족 생활의 어리석음과, 살기 위해 모든 기지를 발휘하는 피가로의 강인한 운명을 대립시켰다.
저자 보마르셰(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1732. 1. 24~1799. 5. 18)
프랑스의 작가. 파리 출생. 시계상의 아들로 태어나 시계제작과 하프 연주의 재주를 인정받아 궁정 출입을 하게 되었다. 또 실업가 뒤베르네의 총애를 받아 투기로 재산을 모으고, 작위(爵位)를 사서 드 보마르셰라고 이름을 붙였다. 희곡 〈으제니〉(1767), 〈두 친구〉(1770)로 극작을 시작하였으며, 뒤베르네의 유산 소송에서 드러난 재판의 부패를 다룬 재기(才氣) 넘치는 〈비망록 (Memoires)〉(1773∼1774)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탈리아 작곡자 로시니의 인기 오페라의 기초가 된 희극 〈세비야의 이발사(Le Barbier de Seville)〉(1775 초연)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후 루이 16세의 밀사(密使)로 각지를 여행하였으며, 미국 독립전쟁에도 개입하였다. 또한 프랑스 작가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활약하고, 볼테르 전집(全集)의 감수를 맡기도 하였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영감을 준 희극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1781, 1784년 초연)은 재치 넘치는 하인이 연애에서 귀족을 이기는 주제에다 사회풍자를 담음으로써, 프랑스혁명 전야의 시민정신에 들어맞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혁명 중에 투옥되었으며, 그 후 혁명정부에 협력했으나 결국은 국외로 피신, 집정관(執政官) 정부시대에 파리로 돌아와(1796), 몇 해 후에 사망하였다. 그 밖의 작품에 철학적 오페라 〈타라르〉(1787)와 〈세비야의 이발사(Le Barbier de Seville)〉, 〈피가로의 결혼〉과 더불어 3부작을 이루는 희극 〈죄 있는 어머니(La Mere coupable)〉(1792)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