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전남 강진 출생으로 본명은 윤식, 아호는 영랑이다.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를 거쳐,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 영문학과에서 수학했다. 그 후 박용철, 정지용, 정인보 등과 《시문학》동인으로 참가하면서 활발히 시작활동을 펼쳤다. 생전에 《영랑시집》(1935년), 《영랑시선》(1949년)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때 유탄을 맞아 애석하게 운명했다. 우리 민족의 정한을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진 영랑의 시 세계는 동양적 은일의 시관과 한시, 특히 고산 윤선도의 시조 등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자연에 대한 음풍농월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면서 동시에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 앞에서 승복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일제 치하의 억압적 신민지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맑게 투영한 탁월한 서정시를 쓴 이 시인은 추상적 관념을 거부하고 자연물에 대한 순정한 심정을 투사함으로써, 고용한 내면을 지순한 언어로 표상한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