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평남 용강에서 출생. 본명은 원주(元周). 이화전문과 동경의 영화(英和)학교를 수료한 후, 한국 근세사의 여류 문인으로 활동했다. 1920년에 잡지 《신여자(新女子)》를 창간해 여성해방을 부르짖으며 당시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28년 만공스님의 문하로 입산, 덕숭산 수덕사 견성함에 거처하며 수도생활에 정진하다가 1971년 입정했다. 작품으로는 《어느 수도인의 회상》,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 《단장(斷腸)》, 《애욕(愛慾)울 피하여》, 《일엽선문(一葉禪文)》, 《당싱은 나에게 무엇이 되었삽기에》, 《사랑이 무엇이더뇨》, 《꽃이 지면 눈이 시려라》, 《청춘을 불사른 뒤》등이 있으며, 입적 후 월송 스님에 의해 출간된 문집 《미래세가 다하고 남도록》이 있다. 수덕사 환희대에 영정과 추모탑이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