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

도연명 시집(연암서가 고금문총)

도연명 | 연암서가
  • 등록일2017-04-25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4 K  
  • 지원기기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 보유현황보유 1, 대출 0, 예약 0
  • 평점 평점점 평가없음

책소개

옛 글 가운데 오늘에도 여전히 읽힐 수 있는 ‘고전’을 엄선하여 펴내는 ‘새로운’ 고전읽기「연암서가 고금문총」『도연명 시집』. 도연명은 소요유의 경지이자 삶의 터전인 전원에서 직접 농사지으면서 도가의 가르침에 따라 살았고 그 감회와 깨달음을 시로 형상화해 내었다.

저자소개

저자 : 도연명
저자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중국 남조(南朝)의 동진(東晋) 말기부터 송(宋) 초기에 걸쳐 활동한 중국의 대표적 시인이다. 자(字)는 원량(元亮)이고 이름은 연명(淵明)이었는데 동진이 망하고 송이 들어서자 잠(潛)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五柳) 선생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의 남서쪽에 위치한 채상(柴桑)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동진 초기의 명장 도간(陶侃)이고 외조부는 당시의 명사 맹가(孟嘉)였다고 한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팽택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즈음에 쓴 작품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그의 시문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담하여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중시되지 않았지만 당대(唐代) 이후는 6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 존중되었다. 당대(唐代)의 맹호연(孟浩然), 왕유(王維), 저광희(儲光羲),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 등이 도연명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은 『시품(詩品)』에서 “고금 은일시인(隱逸詩人)의 으뜸”이라 평하였으며 소명태자(昭明太子)는 『문선(文選)』에 9편의 시문을 수록하였고 도연명집을 편찬하였다. 시 외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도화원기(桃花源記)』 등 산문에도 뛰어났다.
역자 : 김창환 (역주)
역주자 김창환(金昌煥)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과를 졸업하고 한국고전번역원의 국역연수원에서 유가 경전을 위시한 한문의 기초를 공부하였다. 연수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초빙교수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중국어문학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달라이라마의 생각을 읽자』(김영사), 『중국의 명문장 감상』(한국학술정보), 『도연명의 사상과 문학』(을유문화사), 『중국어 유래어휘사전』(제일어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 『장자』(을유문화사), 『유원총보역주』(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먹구름(停雲)」 1수 및 서문
「계절의 운행(時運)」 1수 및 서문
「무궁화(榮木)」 1수 및 서문
「장사공에게 증정함(贈長沙公)」 1수 및 서문
「정채상에게 드리는 답시(酬丁柴桑)」 1수
「방참군에게 보내는 답시(4언) [答龐參軍(四言)]」 1수 및 서문
「농사를 권장함(勸農)」 1수
「아들에게 자(字)를 지어 주면서(命子)」 1수
「돌아온 새(歸鳥)」 1수
「몸과 그림자와 정신(形影神)」 3수 및 서문
「몸이 그림자에게 줌(形贈影)」
「그림자가 몸에게 대답함(影答形)」
「정신의 풀이(神釋)」
「9월 9일에 한가로이 지내면서(九日閑居)」 1수 및 서문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5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1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2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3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4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5수
「사천에 나들이하면서(遊斜川)」 1수 및 서문
「주속지, 조기, 사경이 세 사람에게 보임(示周續之祖企謝景夷三郞)」 1수
「걸식(乞食)」 1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주씨 집안 선영의 잣나무 밑에서 놀면서(諸人共遊周家墓栢下)」 1수
「원가행 체의 초나라 곡조로 방주부와 등치중에게 보여줌(怨詩楚調示龐主簿鄧治中)」 1수
「방참군에게 보내는 답시(5언)[答龐參軍(五言)]」 1수 및 서문
「5월 초하루 아침에 지어 대주부의 시에 화답함(五月旦作和戴主簿)」 1수
「연일 오는 비에 혼자 술을 마시며(連雨獨飮)」 1수
「이사(移居)」 2수
「이사(移居)」 제1수
「이사(移居)」 제2수
「유채상의 시에 화답함(和劉柴桑)」 1수
「유채상에게 드리는 답시(酬劉柴桑)」 1수
「곽주부의 시에 화답함(和郭主簿)」 2수
「곽주부의 시에 화답함(和郭主簿)」 제1수
「곽주부의 시에 화 답함(和郭主簿)」 제2수
「무군장군 왕홍(王弘)이 마련한 자리에서 객을 전송함(於王撫軍座送客)」 1수
「은진안과 헤어지면서(與殷晋安別)」 1수 및 서문
「양장사에게 증정함(贈羊長史)」 1수 및 서문
「세모에 장상시의 시에 화답함(歲暮和張常侍)」 1수
「호서조의 시에 화답하여 고적조에게 보여줌(和胡西曹示顧賊曹)」 1수
「사촌 동생 중덕을 슬퍼함(悲從弟仲德)」 1수
「처음으로 진군장군의 참군이 되어 곡아를 지나면서(始作鎭軍參軍經曲阿)」 1수
「경자년 5월 중에 도성으로부터 돌아오는데 규림에서 바람에
막혀 있으면서(庚子歲五中從都還阻風於規林)」 2수
「경자년 5월 중에 도성으로부터 돌아오는데 규림에서 바람에 막혀 있으면서(庚子歲五月中都還阻風於規林)」 제1수
「경자년 5월 중에 도성으로부터 돌아오는데 규림에서 바람에 막혀있으면서(庚子歲五月中都還阻風於規林)」 제2수 「신축년 7월에 휴가 갔다 강릉으로 돌아갈 때 밤에 도구를 지나면서(辛丑歲七月赴假還陵夜行塗口) 1수
「계묘년 초봄에 농막에서 옛날을 생각하면서(癸卯歲始春懷古田舍)」2수
「계묘년 초봄에 농막에서 옛날을 생각하면서(癸卯歲始春懷古田舍)」 제1수
「계묘년 초봄에 농막에서 옛날을 생각하면서(癸卯歲始春懷古田舍)」 제2수
「계묘년 12월 중에 지어 사촌 동생 경원에게 줌(癸卯歲十二月中作與從弟敬遠)」 1수
「을사년 3월 건위참군이 되어 도성으로 사신 가는 길에 전계를 지나면서(乙巳歲三月爲建威參軍使都經錢溪)」 1수
「전에 살던 집에 돌아와서(還舊居)」 1수
「무신년 6월 중에 화재를 만남(戊申歲六月中遇火)」 1수
「기유년 9월 9일(己酉歲九月九日)」 1수
「경술년 9월 중에 서쪽 밭에서 올벼를 거두고서(庚戌歲九月中於西田穫早稻)」 1수
「병진년 8월 중에 하손의 농막에서 추수하면서
(丙辰歲八月中於下?田舍穫)」 1수
「술을 마시고(飮酒)」 20수 및 서문
「술을 마시고(飮酒)」 제1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2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3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4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5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6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7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8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9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0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1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2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3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4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5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6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7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8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9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20수
「술 끊기(止酒)」 1수
「술을 말함(述酒)」 1수
「아들들을 나무람(責子)」 1수
「깨달음이 있어서 지음(有會而作)」 1수 및 서문
「납제삿날(?日)」 1수
「고시를 본떠 지음(擬古)」 9수
「고시를 본떠 지음(擬古)」 제1수
「고시를 본떠 지음(擬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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