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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광주학생운동

김성민 | 역사공간
  • 등록일2016-02-10
  • 파일포맷pdf
  • 파일크기1 K  
  • 지원기기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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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29년 광주학생운동은 한국근현대사의 큰 물줄기를 이끈 동력이었다. 광주학생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의 학생시위를 시작으로 1930년 3월까지 전국적으로 전개된 학생운동을 말한다. 흔히 일제시기 3대 민족운동의 하나로 평가된다. 운동의 규모 면에서 3·1운동 이후 가장 크게 전국으로 확산된 대중운동이었다. 일제 식민통치의 본질과 식민지 노예교육의 현실에 대한 전국적인 공감대를 형성케 한 사건으로 국외로 파급되면서 각지의 민족운동 세력에 의해 새로운 운동력으로 전화되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의 학생들은 엄혹한 식민지 현실과 이를 극복하려는 이상 사이에서 갈등했던 계층이었다. 다른 계층에 비해 그나마 자신의 장래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식민지 사회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저자는 당시의 지성인이었던 학생들이 자신의 출세가 아닌 민족의 독립을 위해 역사 속에 뛰어든 실천의 원동력이 궁금하였다. 이 책은 2007년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인 『광주학생운동 연구』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저자는 광주학생운동을 통해 1920년대 학생들의 역량이 결집되는 과정을 밝히기 위해 광주학생운동 이전 1920년대 학생의 존재양태와 동맹휴학, 사회인식과 운동론 등을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또한 전국적 전개양상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구체적인 실상에 접근하려 했으며, 해외로의 파급도 중요하게 다뤘다. 그 이유는 광주학생운동이 해외의 민족운동 세력을 추동함으로써 학생운동의 차원을 넘어 민족운동의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3·1운동이나 6·10만세운동은 처음부터 민족독립의 목적을 분명히 한 운동이었다. 반면 광주학생운동은 처음 한·일 학생들의 사소한 충돌에서 시작되었으나, 진행과정에서 민족해방운동, 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운동사적 측면에서 광주학생운동의 의의는 운동이 스스로 성장하여 민족운동의 큰 흐름을 형성했다는 데 있다. 일제 식민지시기 3대 민족운동에서 학생들은 주요한 동력이었다. 해방 이후 학생들은 순수한 열정과 헌신으로 다시 4·19혁명과 민주화운동의 주역이 되었고 앞으로도 학생들은 우리 사회를 정화시키는 소금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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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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