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표적인 한글학자로서 실천적 교육자 우리의 민족성을 보존하기 위해 일제와 투쟁한 비타협 민족주의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 이윤재는 일제 시대의 대표적인 한글학자이자 실천적인 교육자로 일평생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날 열쇠를 우리 민족에게 쥐어주었다. 그 열쇠는 바로 우리말과 우리역사의 보급이었다. 우리말과 우리역사를 제대로 알아, 이를 바탕으로 우리민족이 대동단결하여 일제와 싸워 독립을 쟁취하자고 호소하였다. 국어학자 주시경의 주장을 계승하여 우리말과 한글을 연구하고 보급한 최현배·이극로·신명균·이희승·장지영 등과 함께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에 참여하여 언어독립운동인 한글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글운동은 일제의 언어동화정책에 대한 반역이었기에,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조선어학회의 중진이었던 이윤재도 일제의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함흥감옥에서 복역하다가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1943년 12월 옥사하였다. 일제강점기 일생을 민족혼을 보급하기 위해 활동하다가 침략자들에게 희생되었다. 이윤재의 글은 일제의 탄압으로 삭제되는 경우가 많았고, 책은 발매 금지되었다. 그의 저서가 일제에 대한 강렬한 저항이 담긴 내용이 많았기에 탄압을 받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칠 줄 모르고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우리말글 연구와 사론을 남기는 활동을 지속하였다. 동시에 3·1운동에 참여하고 흥사단과 수양동우회 활동을 지속하였으며, 우리말글을 연구하고 조선말큰사전을 편찬하고자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학회에 핵심인물로 활동하였다. 필자는 이윤재에 대해 새롭게 세 가지를 주장하였다. 첫째, 이윤재는 일제강점기 우리 말글을 가장 많이 보급한 한글운동가였다. 그는 우리말을 말살하던 일제에 맞서, 조선어학회 동지들과 함께 한반도 전역과 만주까지 곳곳을 찾아다니며, 1924년에서 1937년까지 14년 동안 총 48회 148일간에 걸쳐 우리 말글 강연·강습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동시에 우리말 규범 수립운동에도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둘째, 이윤재가 수십 편의 사론과 저서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민족주의 역사가였다는 사실을 남북한에서 최초로 실증적으로 밝혔다. 사론을 통해 그는 자주정신, 자가정신(自家精神), 조선아(朝鮮我)의 정신을 내세워, 독립을 쟁취하자고 역설하였다. 이것이 그의 역사인식의 요체였다. 그의 반일 민족주의 역사인식은 일제에 의해 발매 금지 처분된 『성웅 이순신』(1931)에 잘 드러나 있다. 셋째, 이 책은 남북한에서 최초로 나온 이윤재 전기로 그의 생애를 제대로 복원하였다. 독립운동가로서 한 평생을 보낸 그의 일대기를 기술하였다. 우리민족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것은 강탈당한 물건을 되돌려 받는 것과 같다고 일제 재판부에 명쾌하게 밝힌 점, 안창호가 조직한 흥사단에 이윤재가 1922년 6월에 가입한 것, 경신학교 교원으로 있던 1933년에 제자들에게 조선의 독립을 예견하는 발언을 한 것, 자신의 집을 조선어학회 회관 건립 부지로 내놓은 것, 이윤재를 고문치사한 조선인 형사의 이름이 김석묵(창씨명 시바타)과 안정묵(창씨명 야스다)이라는 사실과 주시경이 1910년경에 한글 명칭을 창안하였다고 주장한 사실 등을 새로이 밝혔다. 이처럼 이윤재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영혼을 담는 그릇인 우리말과 민족정신의 결정체인 우리 역사를 유지하여 민족과 민족성을 영구히 보존하려고 일제와 투쟁한 비타협 민족주의자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말과 우리역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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