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단독주택' 대신에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자
회색 도시와 아파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많은 이들이 단독주택을 꿈꾼다. 마당 있는 집은 한국 정서에도 맞고 친환경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심 저층 건물이 늘어나면, 근교로 밀려나는 장거리 출퇴근자도 늘어난다.
기숙사 같은 아파트는 해법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는 도시를 단절시킨다. 건축가 황두진은 한국 도시에 해법이 될 만한 중요한 개념(밀도, 복합 등)을 내놓는다. 회색 도시를 바꾸는 무지개떡 건축으로, 실제로 저자가 여러 규모와 용도로 지었다.
서울의 평균 층수는 2.5층에 불과해 밀도가 낮다. 저자가 제안하는 건축은 5층 높이에, 층층이 기능이 달라서 무지개떡을 닮았다. 1층에 상가, 그 위에는 주거공간이나 사무실, 옥상에는 마당을 얹은 수직의 마을이다. 지하실도 도시의 밀도에 기여한다. 이런 건축이 늘면, 도심 거주자가 늘어 동네가 살아난다.
건축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공공성을 품은 건축이 도시를 살린다. 가우디의 걸작 ‘카사 밀라’, 오스트리아의 훈데르트바서 집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동네 사람들과 소통하는 구조다. 유럽 도시가 무지개떡 건축으로 해석되는 부분은 흥미롭다.
저자는 도시 역사나 사회학 등 인문적 지식과 건축공학, 개인체험을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한국 도시만의 해법을 찾는다. 한옥 연구도 ‘다공성’,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수학한 황두진은 2000년부터 독립하여 서촌 골목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해왔다. 2012, 2015년에는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받았다.
건축은 미학이나 철학을 넘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도시”를 고민해야
누구나 살고 싶었던 아파트를 이제는 모두가 비난한다. 단독주택을 꿈꾸고 타운하우스나 땅콩주택 등이 시도되지만, 대다수에 적용되는 대안은 아니다. 도시가 더 많은 주거공간을 확보하고, 더 많은 이들이 일터 근처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질은 ‘아름다운 풍경’ 보다 출퇴근시간에서 영향을 받는다.(2013, 서울연구원) 직장과 거주지 간 거리는 행복과 반비례한다.
최근 건축에 관한 인문사회서가 관심을 끌고 있지만, 건축의 심미적인 면이나 정치 이슈에 한정되는 것 같다. 건축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건축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해답을 내놓는 일이다. 이는 21세기에 하는 ‘택리지’적 질문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가 친환경적이다!
도시에 건물이 모여 있어, 도시가 도시다울 때, 역설적으로 자연에까지 개발이 미치지 않을 수 있다. 건축 밀집 지역과 너른 공원 숲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뉴욕을 상상해보자. 도시는 도시고, 산은 산이다. 다만 중세 성곽 같은 담장을 두른 아파트는 도시를 파편화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산업전사가 되어 일련번호가 붙은 기숙사 같은 건물, 즉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바람직한 도시 환경에 대한 고려 같은 것은 그리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다.”(서문 중에서) 밀도가 사람 간의 교류를 헤쳐서는 안 된다. 저층이 상가나, 필로티 등 열린 공간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상가건물이 '직주근접'을 구현한다.
안쪽에 주인이 사는 가겟집은 지금도 동네에 가면 볼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상가주택은 1959년 서울역 앞에 지어진 것으로 건재하다.(36쪽 사진) 세운상가는 보행을 어렵게 만든 구조라 비판을 받지만,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이나 반포의 노선상가 아파트는 거리를 살려왔다. 가게 딸린 집이라는 편견도 있고, 90년대 말 주상복합은 실제로는 아파트에 가까웠지만, ‘복합’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1층에 상가가 들어서면 거리가 활기를 띤다. 무지개떡 건축에서는 저층 상가 위에 집이나 사무실이 여러 층 올라간다. 옥탑방은 건물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옥상마당으로 변신할 수 있다 잉여 공간인 옥상에서 차를 마시거나 인근 산을 바라보면 어떤가?
한옥의 장점을 오늘날에 살려, 다공성과 기학학
한옥은 문과 창의 개폐방식이 유난히 다양하다. 대청마루의 들어열개문이 절정이다. 저자는 이를 ‘다공성 밸브’라고 이름 짓는다. 다공성은 외부와 내부가 만나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난방비도 절감되고, 같은 공간이지만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 한반도 사람들이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답답한, 다공성이 현저히 낮은 건물을 짓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93쪽)
중층 건물이 즐비하면 갑갑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답답함을 해소하고 가로변의 채광이나 환기, 경관 등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필로티나 발코니, 옥상마당을 조성해서 다공성을 높이면 된다.
한옥을 오래 연구했던 저자는 중첩된 기하학에 주목한다. 비정형이 거친 돌 위에 가지런한 목재 기둥, 그 위와 연결되는 공포와 처마. “서로 다른 기하학은 ... 각 공간 안에서의 건축적 경험을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
무지개떡 건축 짓기의 실전
저자는 현장의 건축가다. 이 책에서 제시한 무지개떡 건축의 실재 사례가 8건이다. 여기에는 현대 배구단의 독특한 훈련합숙시설로 잘 알려진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도 포함된다. 배구단의 높은 코트 주변으로 숙소가 배치된다. 1층에는 비행기 격납고 문을 달아서 다공성을 펼쳐냈다. 낮에는 단순한 큐브로 보이지만, 밤이 되어 조명이 켜지면 벽의 공극 사이로 복합 기능이 드러난다.
저자가 살고 있는 ‘목련원’은 1층은 저자의 건축사무소와 다른 회사의 사무 공간, 2층은 저자의 주거 공간이다. 마당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직주근접의 삶의 장단점을 체험 중이다.
또한 무지개떡 건축을 구현하는 전제로 치러진 학생 공모전도 빠질 수 없다. 개성을 가상대지로 하여 무지개떡 건축을 실험하는 작업이었는데 학생들의 참여율도 아이디어도 놀라웠다.
저자는 무지개떡 건축 지수를 개발했다.(255쪽) 밀도와 복합성 등 10개 항목으로 평가한다. 카사밀라는 94점, 한강맨션은 다공성 등이 부족해 80점에 그친다.
황두진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건축석사 학위를 받았다. 재미건축가 김태수 문하에서 7년간 일했으며, 2000년 독립하여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다.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문화유산상(공동 수상), 서울특별시 건축상(2012, 2015) 등을 수상했다. 동네 건축가를 자임하는 저자는 과거와 달리 눈이 오면 골목에서 눈을 함께 치울 이웃이 줄어든 것을 지켜보면서 미래의 마을은 어떤 것일까를 상상한다.
여는 글_ 왜 무지개떡 건축인가
1장.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있을까
시루떡 도시의 풍경 / ‘서울적 해법’을 찾아 / 저밀도의 한계 / 복합건축의 등장 / 도시, 제2의 자연
2장. 도시라는 생태계
도시가 친환경적이다! / 친환경의 허상 / “아니, 몰라.” / 밀도의 양과 질 / 유럽 도시의 현실 / 직주근접, 그리고 푸리에와 고댕 / 페리메터 블록과 중정
3장. 다공성과 중첩된 기하학
다공성과 걷기 좋은 거리 / 비워야 쾌적하다 / ‘다공성 밸브’ / 카사 밀라는 무지개떡 건축? / 중첩된 기하학과 한옥
4장. 무지개떡 건축의 설계
무지개떡 건축이란 / 건무과 길이 만나는 곳, 저층부 / 효율과 절제가 필요한 곳, 중층부 / 건물이 하늘과 만나는 곳, 상층부 / 도시의 새로운 신천지, 옥상
5장. 무지개떡 건축으로 만드는 동네
무지개떡 건물의 입지 / 무엇이 규모를 결정하는가 / 합필, 그리고 자본의 문제 / 기존 아파트를 수직의 마을로 / 시시각각 변하는 카멜레온 건축 등 (이하 생략)
6장. 무지개떡 건축의 사례
닫는 글 / 무지개떡 건축 지수 / 주석 / 참고자료 /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