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모든 성도들은 성경 말씀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부터 신약성경 요한계시록까지, 믿음을 시작할 때부터 항상 가까이 두고 읽거나 중요한 요절을 외우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의 깊이가 더해갈수록 더욱 사모하게 되는 것도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경 말씀은 날마다 먹는 음식과 같은, 영적으로는 더욱 중요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 육십육 권 중에서 맨 끝에 자리하고 있는 책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특별한 사랑을 받던 사도 요한이 기록한 책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노년에 주님의 명령을 받아, 알려주신 대로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충실하게 기록한 내용입니다. 책의 처음과 마무리 단계에서 저자 요한은 이 책의 내용이 참으로 진실한 것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일을 기록했다고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또 곁에서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서 중요한 대목마다 인증해주고 계심도 보게 됩니다. 시기적으로도 바울 서신보다 이삼십년이 지난 후에 기록되었으니 어느 성경 못지않게 신뢰가 확실한 책입니다.
그러나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성향을 살펴보면 요한계시록에 대한 무관심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무척 좋아하고 공부도 많이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신앙의 연륜에 관계없이 잘 찾아보지도 않습니다. 매 주마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에서도 요한계시록 말씀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지간히 신앙생활을 깊이 있게 한 성도들이 아니면 요한계시록이 성경에 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성경 중에서 아주 소중하면서도 따돌림 당하는 성경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계시록 입장에서 보면 더욱 분통이 터질 일은 목양을 담당하는 목회자들이 노골적으로 괄시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점을 아마 분해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홀대 받는 이 성경을 곁가지들이 상품화해서 창업을 한 곳이 여러 곳입니다. 우후죽순 격으로 우리 사회의 교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이단과 사이비가 그것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고 궁리해서 자신들의 유익을 도모하는데 활용합니다. 정통교회의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만한 이해와 믿음이 없으니 그들의 논리에 속아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교회가 그들을 이기고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성도들에게 길러주어야 하는데, 무조건 그들은 틀렸고 악하니 따라가지 말라고만 가르친다면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와 믿음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저는 그야말로 평신도로서 성경을 연구하거나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흔이 넘어서자 주님 만날 날이 가깝다는 생각에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신 주님의 재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성경통독을 하면서 요한계시록을 몇 번 읽은 적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닥을 잡아서 이해하지는 못 했습니다. 평생을 예수 믿으면서 더구나 수십 년 장로까지 지내면서, 눈앞에 다가올 장래 일을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 말씀을 너무나도 모른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아보았습니다. 연구가 깊으신 분들의 책을 참고하면서 다양한 견해를 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나름의 가닥을 추려보겠다는 결심이었지요.
주로 인터넷을 활용해서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세상이니, 폭넓게 이것저것 둘러볼 수 있어서 참으로 편리하게 홀로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인터넷의 장점은 찾고자 하는 바를 무엇이나 쉽게 접근해서 살펴볼 수 있다는 편리성입니다. 반면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견해들을 접하다 보니 정리하기가 힘든 그 혼란성은 커다란 단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 계시록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와 믿음마저 갖추지 못한 성도들은 미혹하는 자료들을 보게 되면 잘못 빠져들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는 동영상 자료나 그림 자료들 중에는 비성경적인 내용들이 강렬한 자극성을 지닌 채 올려져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죠.
인텨넷 세상에서 보면 요한계시록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그 열기가 뜨겁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해석해보려고 애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숨기지 않고 공유해보고자 정성껏 포스팅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학습자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자료들을 모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점차 계시록의 큰 줄기가 잡히게 되고 다른 연구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세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추구하는 방향이 맞는 자료는 남기고 사뭇 어긋나는 자료는 배제시키는 작업이 언제나 일차적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들여다보면서 제가 추구하기로 결정한 방향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시는 분이지 온갖 지식을 다 동원해야 알까말까 하도록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각심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에 나타나는 사건들이 미래의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 반드시 그와 같이 전개될 사건이라는 점을 확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가급적 문자적으로 충실하게 해석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제 입장에서는 아주 타당하고 일종의 특이한 사명감에 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학을 전공으로 한 적이 없으니 성경의 원전에 관련된 헬라어나 영문해석을 끌어들일 능력이 없습니다. 성경역사에 관한 지식도 평범한 성도들이 알고 있는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창세기부터 유다서까지 성경의 맥을 통달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한글 문자로 기록된 성경 몇 종류를 통해서 개념과 의미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입니다. 조금 억지를 붙이자면, 한글 계시록 성경을 제가 이해하지 못하도록 주님이 계시하시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본서의 해설 부분에 들어가 읽노라면 간혹 전문적 용어나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이는 모두 인터넷 자료 덕분입니다. 전문가의 지식을 배워서 해설자의 견해를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사명감이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얘기하고 통하는 말입니다. 계시록의 저명한 저서나 논문들을 찾아 필요한 부분의 해설을 읽다보면 상당한 괴리감을 안겨주는 글들이 있습니다. 성경이나 신학에 대한 지식이 넘쳐서 지나치게 섬세한 해석을 내놓는 것이 그렇고, 지나치게 상징적으로 접근해서 묵시록이 아니라 묵시적인 문학작품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는 계시록의 사건들을 지나간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져온 일들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사건의 예언적 사실성보다 그것이 의미하고 있는 현실적인 교훈 즉 위로와 희망에 방점을 주기도 합니다. 더욱 불편한 경우는, 계시록을 기록된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교계나 신학계에서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이 백안시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을 때입니다.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계시록 설교를 쉽게 하지 못하는 이유도 무식하다거나 이단소리 들을까봐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러나 학설이 난무하고 해석하는 견해가 여기저기 다를 수는 있지만 ‘장차 주님이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마저 문학적인 상상으로 해석하려 든다면 그는 분명한 사이비겠죠. 계시록은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깝고 확실한데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오실 것인가를 소상하게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다만 그 과정 설명에 나오는 그림들이 현상적인 실체와 다른 이미지를 사용한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마치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많은 비유를 들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한 것과 흡사합니다. 이런 식의 상징은 계시록 안에서 대부분 해석이 가능합니다. 용어마다 개념마다 일일이 신구약 성경을 뒤져서 지나치게 해석하려는 노력은 연구논문 작성에서나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계시록 예언의 말씀을 가급적 문자적 개념에 입각해서 해석해야 보다 구체적인 부분까지 개략적 합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음이 신학적으로 무식한 저만의 특이한 사명이라는 것이죠.
본 저서는 한 개인이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정리한 나름의 해석이지 객관적인 해석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계에 발표되어 있는 계시록의 건전한 다른 견해들을 당연히 존중하고 있습니다. 합치되는 점도 있고 전혀 엉뚱하게 다른 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과정을 설명한 요한계시록 성경 말씀을, 기록된 문자적 개념대로 믿겠다는 제 신앙적인 결심의 산물입니다. 다른 견해들에 대해서 당신 생각은 틀렸다라고 말할 마음도 없고 그럴만한 자격도 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주님이 오실 때 밝히 드러나리라 생각하지만 나름대로 해석한 시나리오가 얼마나 적중할 것인가를 고대해보는 것도 흥미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보기엔 교계에 공통적으로 합의된 전체적인 특별한 해석이 아직 없으니 개별적으로 이런 저술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름 : 김경렬 (金炅烈)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광주지역 교회에서 23년간 장로 시무
광주?전남지역 초등교육계에서 40년 이상 봉직?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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