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한 세계 서간체 소설의 결정판
≪클러리사 할로(Clarissa Harlowe)≫는 편지 모음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소설이다. 모든 편지는 실제로 작가가 썼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작중인물들이 쓴 것을 편집인이 수집하고 정리한 것처럼 되어 있는 ‘보여 주기’ 기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독자는 겁탈당하고 심신이 탈진한 클러리사의 내면을 숨결과 체취까지 느끼며 들여다볼 수 있다.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은 이 작품으로 서간체 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 서간체 문학의 모든 기법이 완벽하게 구사되고, 모든 이점이 철저하게 활용된 예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문학사상 가장 긴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총 8권이다. 200자 원고지로 16,492장이다. 이 방대한 소설은 오늘날 영어권의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영문학과 학생들, 교수들조차도 전체를 다 읽기 어려워 축약본을 찾는다.
이 작품이 사건에 비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독자에게 당시의 저명한 비평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이 작품을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는 너무 지루하고 속상해서 죽고 싶을 지경일 것이다. 스토리는 인물의 내면을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읽을 만한 책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던 당시에는 많은 독자가 작품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 작품의 길이에 대해 리처드슨은 어느 저명한 비평가의 견해를 인용한다. “작품의 의도가 전편을 통해서 일관된다면, 인물들이 다양하고 자연스러우며 개성적이라면, 흥미를 끄는 다양한 사건들이 독자를 항상 긴장시킨다면 작품의 길이는 길수록 좋다. 그러나 모든 점이 이와 반대라면 한 편의 우화보다 짧다 하더라도 독자를 지루하게 할 것이다.”
전국의 영문학자들이 기다리던 책
이 방대한 분량의 대작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국내 최초로 온전히 번역해 출간했다. 작가가 철저히 수정하고 보완해 많은 학자들이 ≪클러리사 할로≫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하는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번역자 김성균은 걸작을 더욱 완전하게 소개하기 위해 리처드슨의 의도를 살린 원전의 편집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지은이의 모든 주석을 원전의 표기 그대로 반영하고, 원전의 쪽수를 참고하라는 내용에는 이 책에서의 해당 쪽수를 친절하게 밝혔다.
이 번역이 나오기까지 우리 영문학계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축약본으로 이 작품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영문학도, 대작의 번역을 고대하던 교양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완전한 판본, 완전한 분량, 완전한 번역은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만큼이나 큰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클러리사 할로≫
영국 소설사가들은 새뮤얼 리처드슨을 같은 시기의 헨리 필딩(Henry Fielding), 토비아스 스몰렛(Tobias Smollett),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과 함께 영국 소설의 기초를 이끈 네 바퀴로 평가한다.
그가 ≪클러리사 할로≫ 이전에 쓴 ≪패멀라(Pamela)≫는 현대적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빈한하고 미천한 집안 출신이지만 빼어난 미모와 지혜와 신앙심을 두루 갖춘 10대 중반의 어린 하녀가 젊고 부유한 미남 지주의 온갖 유혹과 위협과 술수를 물리치고 마침내 그의 정식 아내가 된다는 ≪패멀라≫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패멀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는데, “거짓 순수성이 드러나다”라는 부제를 단 ≪반패멀라≫, 허위라는 뜻의 ‘sham’을 합성시킨 ≪섀멀라≫, ≪패멀라≫를 패러디한 ≪조지프 앤드루스≫ 등이 잇달아 출간되기까지 했다.
리처드슨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클러리사 할로≫로 반격했다. ≪클러리사 할로≫는 ≪패멀라≫의 주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작품이다. 리처드슨은 두 작품에서 여성의 순결은 중요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역설한다. 여기서의 순결은 처녀성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를 집약한 상징이다.
당시의 독자들은 리처드슨에게 여주인공을 죽이지 말고 남자 주인공과 결혼시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희롱하고 유린하는 자는 반드시 사회적·종교적 응징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끝끝내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다.
역자 김성균과 ≪클러리사 할로≫
역자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를 읽으면서 근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주제를 보다 완벽하게 전개시킨 ≪클러리사 할로≫에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클러리사 할로≫를 끼고 살았고, 이후 그의 학문 연구 기간 내내 화두가 되었다. 아름답고 총명한 어린 여주인공이 불가항력적인 고난에 강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후로 그는 클러리사와 반세기를 함께 살았다.
3년 동안 번역했고 4년 동안 가다듬었다. 18세기 작품이라 고증이 필요한 것은 참고 문헌을 뒤적였고,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애썼다. 주석, 표기 어느 것 하나 원전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모르는 고전 라틴어 인용문은 전공자들의 도움을 얻었다.
역자에게 클러리사는 현실 속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친근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역자는 이 작품을 탈고하고 나서 “내 일생을 결산하는 최고의 작업이 끝났다”라고 말했다.
새뮤얼 리처드슨 (Samuel Richardson)
저자 새뮤얼 리처드슨의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인정받는 장인(소목장이)으로서 특히 몬머스(Monmouth) 공작의 총애를 받았다. 공작이 죽자 그의 아버지는 더비셔(Derbyshire)로 피신했고, 거기서 1689년에 리처드슨 외에 세 자녀를 더 낳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시킨 교육은 기초교육, 즉 읽고 쓰고 셈하기 정도가 전부였다. 가세가 기울어 그는 바람대로 성직자가 되는 필수 조건인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고, 17세에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존 와일드(John Wilde)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7년 동안 견습공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독서하고, 성실하고 학식 있는 인물들과 서신 교환을 하면서 교양과 정신 계발에 힘썼다. 견습 기간이 끝난 후 다른 인쇄소에서 감독, 식자공, 교정사 등의 일을 하다가 30세 가까워서(1718년 또는 1719년) 자기 소유의 인쇄소를 개업했다. 1720년에 런던의 플리트 가(Fleet Street)의 솔즈베리 코트(Salisbury Court)로 그의 인쇄소를 옮기고 일생 동안 그곳을 근거지로 살았다. 20년 후에 그는 런던의 유수한 인쇄소들 중 하나의 소유주가 되었고, 사업이 번창해서 자기 인쇄소에서 영국 하원과 왕실의 인쇄물을 인쇄하는 등(1742∼1755) 국가의 중요한 서적들을 취급했다. 또한 유명한 시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다른 작가들의 저서의 머리말이나 헌정사 같은 글을 써주고 색인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의 글로 남아 있는 최초의 저작물은 ≪견습공 편람: 젊은이가 항상 지녀야 할 지침서(The Apprentice's Vade Mecum, or, Young Man's Pocket Companion)≫(1733)인데, 이것은 주로 하인들이나 견습공들에게 바른 품행을 가르치기 위한 교훈서다. 이것은 그가 그의 조카를 견습공으로 받아들일 때 그에게 준 편지글에다 다른 유사한 내용을 보충한 것이었다. 그가 그다음으로 쓴 저작물은 ≪상용(常用)서간문≫이었는데, 이 책을 쓰던 중에 ≪패멀라 ≫를 착상해 그것을 먼저 써서 출판한 다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그다음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3회에 나누어 1·2권은 1747년 12월 1일에, 3·4권은 1748년 4월 28일에, 그리고 5∼7권은 1748년 12월 6일에 출판되었다. ≪조지프 앤드루스(Joseph Andrews)≫로써 ≪패멀라≫를 통렬하게 풍자했던 필딩은 ≪클러리사 할로≫가 나오자마자 그 작품을 ≪톰 존스(Tom Jones)≫(1749. 2)로 또다시 암암리에 풍자했다. 그러자 리처드슨은 곧바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찰스 그랜디슨 경≫을 써서 1∼4권은 1753년 11월 13일에, 5·6권은 12월 11일에, 그리고 마지막 7권은 1754년 3월 14일에 발표했다. 새뮤얼 리처드슨은 32세였던 1721년 11월 23일에, 그가 처음 견습공으로 들어갔던 인쇄소 주인의 딸인 아홉 살 연하 마사 와일(Martha Wile)과 결혼했다. 10년 후 첫 부인이 죽고 나서(1731. 1. 25) 2년 후에 그는 여덟 살 연하 엘리자베스 리크(Elizabeth Leake)와 재혼했다(1732. 2. 3). 그의 첫 부인은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둘째 부인은 딸 다섯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첫 부인의 아이들은 전부 어려서 죽었고, 둘째 부인의 여섯 자녀 중에서도 딸 넷만 살아서, 그는 결국 여섯 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생존한 네 딸들 중 큰 딸 메리(Mary)만 필립 디처(Philip Ditcher)라는 내과 의사와 1757년에 결혼했고, 나머지 세 딸은 리처드슨이 살아 있는 동안 미혼으로 지냈다. 그는 견습공을 시작한 10대 때부터 일생 동안 런던에서 인쇄업을 하면서 근면 성실한 생활로 자수성가했고, 자기 사업에 성공했으며, 50세가 지나서 첫 작품 ≪패멀라≫를 두 권(제1·2권)으로 발표했다. 그는 ≪패멀라≫의 인기가 높아지자 누군가가 ≪패멀라≫의 속편을 쓴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직접 속편(제3·4권)을 써서 1년여 만인 1741년 12월 7일에 발표했다. 그는 1740년 11월에 ≪패멀라≫를 발표한 후 1754년까지 ≪클러리사 할로≫(7권, 제3판은 8권), ≪찰스 그랜디슨 경≫(7권)을 더 써서 세 작품, 18(19)권을 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전부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지인들이나 그의 작품 애호자들과 수없이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항상 편지를 써서, 심지어 집에 함께 있는 가족에게도 글로 자기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자기가 쓴 모든 편지를 베껴두었고, 받는 편지들도 간직했다. 그의 편지들은 애나 바불드(Anna L. Barbould)가 수집해 간추려 여섯 권으로 출판했으며, 이때 많은 편지가 제외되었다. 리처드슨은 ≪찰스 그랜디슨 경≫ 출판 후에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세커(Secker) 대주교(1693∼1768)나 다른 정치적 거물들과 문필가들이 그를 방문했고, 1756년에는 당시 문학계의 거물 새뮤얼 존슨이 채무에 시달려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리처드슨은 부탁한 것 이상으로 빌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로, 네덜란드어로,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1758년에는 스위스의 지질학자 기욤 앙투안 드 뤼크(Guillaume Antoine de Luc)는 그를 만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그는 1754년에는 런던 교외 고급 주거지의 저택 파슨스 그린(Parson's Green)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많은 방문객을 맞았다. 그의 사업은 번창해서 ≪찰스 그랜디슨 경≫을 출판할 때는 그의 인쇄소에 30명의 직원을 두었으며 1754∼1755년에는 출판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그가 일생 동안 인쇄한 책은 2349권에 이른다. 그는 일생 실내에서 작업한 탓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찰스 그랜디슨 경≫을 쓰고 난 다음부터는 특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죽기 3년 전(1758)부터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걷기 힘들어했으며, 펜을 쥘 힘이 없어 딸에게 글을 대필시키기도 했다. 그는 1761년 7월 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성 브라이드(St. Bride's) 교회당, 그의 첫 부인과 자식들의 곁에 묻혔으며 그의 둘째 부인도 후에 그곳에 묻혔다.
김성균
역자 김성균은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1964년에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연세대학교에 재직했고, 2004년 봄에 퇴임할 때까지 학부와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 소설을 강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다. 석사 학위논문은 <그레엄 그린의 소설 연구>(1966)이고, 박사 학위논문은 영국 18세기 소설 중 가장 난해하며 최초 의식의 흐름 수법 소설이라고 하는 <“트리스트럼 섄디” 연구: 작가의 독자 의식과 소설의 구성>(1979)이다. 저서는 없고, 영국 소설 발생기의 작가들인 존 버니언, 애프라 벤, 대니얼 디포, 엘리자 헤이우드,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로런스 스턴 등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한국 영어영문학회 학회지 *≪영어영문학≫과 연세대 논문집 ≪영어영문학 연구≫에 발표했다. 주석본으로 18세기 주요 소설 대니얼 디포의 ≪몰 플랜더스≫(신아사, 1991), 헨리 필딩의 ≪조지프 앤드루스≫(연세대 출판부, 1995),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연세대 출판부, 1996)를 내었고, 학부 영산문 강독을 위한 주석본 ≪Prose in English≫(연세대, 1998)를 편집했다. 역서로는 그레엄 그린의 ≪명예영사≫(한길사, 1983)가 있다.
편지 1. 러블레이스 씨가 벨퍼드 씨에게
편지 2.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 애러벨라 할로 양에게
편지 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1.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5.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8.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3.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4.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8.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29.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30.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3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2.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33.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4.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6.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3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8.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39.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40.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1.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4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3. 조지프 레먼이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44. 러블레이스 씨가 조지프 레먼에게
편지 4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허비 부인에게
편지 46.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7.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48. 허비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5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51.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2.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3.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54.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5. 하우 양의 편지
편지 5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0.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1.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2.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64.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8.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70. 히크먼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