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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클래식스 고전으로 자본주의를 넘다

박성순 | 루시북스
  • 등록일2013-09-23
  • 파일포맷pdf
  • 파일크기1 K  
  • 지원기기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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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경제적 부유함과 인간성 보존은 동시에 구현될 수 없는 것일까.
자본주의의 끝 간 데 없는 욕망 속에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가.
동서양 사상사와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끌어낸 인간성 회복의 길
고전을 사랑하는 인간 ‘호모 클래식스(Homo Classics)’의 출현을 고대하는 한 역사학자의 제언
인간의 역사가 이룩한 현존하는 체제 중에서 자본주의만큼 성공적인 것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부유해지고 고귀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든지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이 자본주의를 건설한 것은 분명하지만,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순간 자본주의는 파멸의 길을 갈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룩한 물질적 풍요 위에서 보다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한 것이다. 그 답으로 저자는 인성론을 말한다. 공동체를 통해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타자와의 공존을 무시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만의 이익을 쟁취하는 것을 성공이라 부르는 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어떻게 이타적이고 호혜적인 본성을 되살려 말 그대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풀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자본주의를 둘러싼 사상사와 인성에 대한 사상가들의 견해를 폭넓게 살펴본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상가들은 모두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을 것인지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것이 바로 각종 경전, 철학, 사상 등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인류의 지혜이다.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이 같은 지혜는 인성론에 깊은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기에 저자는 역사학과 고전 학습의 부활을 강조하며 ‘고전을 사랑하는 인간, 호모 클래식스’의 출현이 새로운 미래를 불러오리라 기대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맹자, 순자에서 벌린, 매킨타이어, 왈저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욕망과 공공선의 조화, 인성의 완성과 관련한 동서양 사상의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현 사회의 위기를 분석하고 그 대처 방안을 명쾌하게 제시하였고, 어렵지 않게 읽히는 매끄러운 서술 또한 장점이다.
자본주의를 둘러싼 사상사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중세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상가와 종교 지도자들은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이기주의 실현에 더 충실하다는 이유로 상거래와 돈벌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대표적인 예로 중세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상거래는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가장 비난받을 만한 짓이다.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욕구에는 끝이 없다. 소유욕은 무한을 지향한다.”고 주장했다.(19쪽) 이러한 반상업 정서는 동양의 고전과 맥이 통한다. 맹자가 노나라 계씨의 가신 양호의 말을 인용한 “부자가 되려면 어진 삶을 살 수 없고, 어진 삶을 살려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구절이 대표적이다.(21쪽)
이와는 다르게 개인의 권리를 보다 중시하는 사상적 전통 또한 존재하였는데, 6세기경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편찬한『로마법대전』에 담긴 시민법은 시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자유 거래와 사유재산을 합법화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시민법 전통은 17세기에 근대 사상가들이 출현하면서 자연법사상으로 확대되었는데, 이 사상은 인간의 타고난 권리인 자연권, 즉 자유권과 재산소유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상업 활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 되었다.(23쪽)
이후 그로티우스(1583~1645), 토마스 홉스(1588~1679), 존 로크(1632~1704) 등의 사상가는 다원주의와 개인주의를 강조하였고 볼테르(1694~1778)와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상업 활동을 억압하는 기존 체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인간의 자연권을 주장하는 단계를 넘어서 상업 행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선다.(24~35쪽)
애덤 스미스의 공공선
자본주의 사상을 만개시킨 애덤 스미스의『국부론』은 오늘날 시장 만능의 자유방임주의의 근원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저자는 애덤 스미스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개인적 이익만을 최고로 여기는 작금의 후안무치함이 조금은 사그라지리라고 말한다.(172쪽)
상업 행위를 뻔뻔스런 탐욕적 범죄행위 정도로 폄하해 오던 서구 사상사의 전통을 뒤로 하고 애덤 스미스가『국부론』에서 상업 행위를 긍정적으로 옹호한 것은 실은 이기주의의 적극적 실현이 뜻하지 않은 사회적 발전을 가져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국부론』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 또한 사람들이 생산물의 품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자기 이익을 도모하다가 의도하지 않게 사회의 이득을 증진시키게 된 시장 제도에 대한 은유였다.
애덤 스미스는 상업적 이기심이 인간의 덕행을 길러 준다고 보았다. 부자가 되기 위한 기본 덕목인 절약과 부지런함은 물론이고, 이익을 얻기 위한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예절’이라고 하는 인내심을 몸에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옷 가게에 온 손님이 옷을 열 번씩이나 갈아입어 본 뒤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냥 나가더라도 그 옷 가게 주인은 손님의 등 뒤에 짜증 대신 상냥한 인사를 건네는 행위 따위가 그것이다. 더 나아가 상업 행위를 통해 획득한 자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등의 행동도 자신을 기품 있게 보이게 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시키려는 이기적 행위의 발현이라는 식이다.
두 번째로 애덤 스미스가 상업 행위를 긍정한 이유는 시장을 통한 국부의 증진으로 말미암아 대중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는 ‘보편적 풍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보편적 풍요가 절대 빈곤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보면 스미스의 관심사는 상업 행위를 통한 인간의 도덕성 고양에 초점이 모아져 있었다.『국부론』의 토대가 된 저서가 바로 그의『도덕감정론』이라는 도덕철학적 저서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국부론』의 근거가 된『도덕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가 검소한 상인보다는 공공선을 추진하는 입법 의원과 일반 행정가에게 최대의 찬사를 보냈던 바와 같이, 스미스가 희망을 건 대상은 바로 공공정책을 추진하는 정치가들이었다.『국부론』에서 정부의 기능을 분석하고 이 비용을 어떻게 충당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 수백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스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서구 사상사의 맥락에서 보면 애덤 스미스의 상업에 대한 관점은 인간의 이기주의를 긍정하는 파격을 선보였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공동체의 이익이라고 하는 대의로 수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자본주의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욕망 실현이 공동체의 이익과 함께 보조를 맞출 때 긍정적인 지속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예언한 것이다.
스미스의 핵심 요지를 간파한 헤겔과 아널드는 공공선을 염려하는 공무원들을 최고 반열에 올려놓았고, 케인스는 스미스의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여 국가 복지 시스템을 강조하는 수정자본주의를 주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 복지제도 자체가 근시안을 가진 신자유주의의 도전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은 여러 가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를 둘러싼 사상사에서 전통 사상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근대사상의 다양한 모색은 개인의 이기주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데에까지 나아갔지만, 역설적으로 그 논리를 집대성한 스미스에 의해서 다시 서양 사상의 원래 출발점이었던 공동체 우선주의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이 공동체와 유리되어서 사고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명백하게 보여 준다.
호혜적 인간
방 안에 탁자가 놓여 있고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앉아 있다. 한 사람은 게임의 주관자이고, 나는 제안자, 다른 한 사람은 응답자이다. 주관자가 ‘100달러’를 나에게 주면서 그중 일부를 응답자와 나누어 가지라고 한다. 분배의 액수는 제한이 없다. 응답자가 내가 제안한 분배 액수를 흔쾌히 받아들이면 둘은 그 액수대로 돈을 나눠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응답자가 나의 제안을 거절하면 100달러는 다시 주관자가 가져가게 된다. 이를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고 한다.
1982년 독일 쾰른대학에서는 42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후통첩 게임이 진행되었다. 이 실험에서 제안자들은 평균 37퍼센트에 해당하는 몫을 응답자에게 건네주었고, 50퍼센트를 제안한 사람들의 수가 가장 많았다.(21명의 제안자 중 7명이 50퍼센트를 제안. 또한 응답자들은 자신에게 제안된 몫이 총금액의 30퍼센트를 넘지 않으면 제안을 거부했다.)(92쪽)
이 실험 결과가 알려지면서 경제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분야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합리성과 이기성을 기초로 한 경제이론의 예측에서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100달러 중 20달러가 제안되더라도 그것을 거부하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것이 이득이 됨에도 불구하고 왜 응답자들은 그 제안을 거부하는지, 또 제안자들은 왜 50퍼센트에 달하는 금액을 상대방에게 건네주는지 등이 경제이론 면에서 풀어야 할 수수께끼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후 동일한 실험을 다시 시행했을 때에도 유사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제안자들은 평균 40~50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상대방에게 건네주었고, 제안된 금액이 20퍼센트에 미달하는 경우 응답자들은 그 제안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로 사람들은 경제이론의 예측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라면 제안자들의 행동을 전통적 경제이론에 입각해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제안자들은 자신의 물질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원리, 예를 들어 공평성 혹은 이타심 등에 근거해서 행동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최후통첩 게임의 실험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평성이 하나의 중요한 행동 원리가 된다는 것, 그리고 공평하지 않은 제안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몫을 포기하면서까지 그것을 징계하려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러한 행위 동기를 갖는 사람을 호혜적 인간(Homo Reciprocan)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최후통첩 게임 실험을 통해서 호혜적 인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호혜성의 원리가 국가마다 차이가 있는지 검증해 보고자 1991년, 예루살렘, 류블랴나, 피츠버그, 도쿄에서 각각 최후통첩 게임이 실행되었다. 그 결과 제안자의 입장에서 여전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값은 40~50퍼센트 정도였으며, 미세한 국가 간의 차이만이 확인되었다.(예루살렘의 경우 약 40퍼센트였고 피츠버그와 도쿄에서는 50퍼센트 정도였다.) 결국 인간의 호혜적 특성은 인류 공통의 현상이었다.
시장이라는 곳은 이득을 극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철의 규율이 작동하는 곳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장이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철의 규율과 병행해서 역설적으로 강한 호혜성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위의 실험은 보여 주고 있다. 상대방의 몰락은 곧 나의 몰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영속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인성의 완성,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
동서고금을 통해서 수많은 사상가들이 집중한 문제는 인간의 욕구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한 인격의 도덕성 완성이라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서양철학에서 칸트(1724~1804)는 개인적 도덕을, 헤겔(1770~1831)은 사회적 윤리를 강조한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둘 다 개인과 공동체를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다만 칸트의 경우 화해의 중심에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존재로서 개인이 있고, 헤겔의 경우에는 역사 속에서 구현해 온 인간 이성의 실체로서 공동체가 있다.(121쪽) 중국 철학사에서 맹자와 순자의 인성론은 모두 사회적 대인 관계 또는 위계질서를 안정시키고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동서양을 떠나 인간의 사유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어 칸트를 맹자에, 헤겔을 순자에 비교할 수 있는데, 칸트나 맹자는 개인의 도덕성과 그를 바탕으로 한 합의의 결과가 법이나 사회적 규범의 제정으로 이어진다고 보았고 헤겔과 순자는 사회적 규범과 규제를 통해서 인간의 도덕성이 유지되는 것이라 보았다. 이 차이점을 떠나 분명한 것은 인성의 완성이 사회와의 부단한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멀리는 공자에서부터 최근의 에릭슨(1902~1994)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141쪽)
서구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이상적 인간상과 동아시아 유학사상에서 제시하는 이상적 인간상도 대체로 유사하다. 서구에서 제시하는 자기 정체성 확립 및 자기실현과 따뜻한 대인 관계의 특징은, 동아시아에서 제시하는 자기 수련을 통한 도덕적 자기완성과 대인 관계의 인화 도모라는 특징과 비슷하다.(148쪽)
요컨대 개인의 인격 완성은 부단한 자신의 각성과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동서양을 떠나 인격 완성의 길은 개인에서 인류로, 비근(卑近)한 곳에서 고원(高遠)한 곳으로 향한다.
결론
훌륭한 인성은 공동체를 번영?발전시키는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사상가들은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를 위해 도덕 주체인 개인의 각성과 실천이 더 중요한지, 아니면 공동선을 위해서 방종한 인간들을 규제하는 사회적 규범이 더 중요한지 의견이 갈라지긴 했어도, 결국 인간의 도덕에 대한 자율적 의지가 그 핵심 요소라고 하는 것에는 이론이 없었다.
마르쿠제(1898~1979)가 지적했듯,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신에게 씐 굴레를 망각한 채 교묘하게 위장된 행복에 묻혀 허위 욕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노예가 아닌 본래 인간으로서 느껴야 하는 참 욕구(69쪽)에 충실하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존재로 살아갈 의무와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인간의 이기주의 문제는 비단 자본주의 체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보다 현재가 더 심각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인간의 욕망을 극한으로 부추김으로써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이끌어 가는 사회가 바로 상업 사회이니까 말이다.
결론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 ‘처음’은 애덤 스미스의 공공선을 지향하는 위대한 정신이고, 사람들이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착한 본성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자본주의 레짐’에 대한 각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하루하루를 적당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허위 욕구 속에 안주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참 욕구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 그 출발점에는 항상 인성론에 대한 깊은 성찰이 기다리고 있다. 인성론에 깊은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는 역사학과 고전 학습의 부활이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전을 사랑하는 인간, ‘호모 클래식스’의 출현은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지혜롭게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박성순
저자 박성순은 단국대 역사학과 및 고려대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고려대 사범대 외래교수, UCLA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유교연구평가위원, 동양고전학회 편집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 단국대 교양기초교육원 교수로 있다. 박사학위 논문은「화서 이항로의 심주리설과 척사론 연구」이고, 저서로는『선비의 배반』,『박제가와 젊은 그들』,『조선유학과 서양과학의 만남』,『한국사상사 입문』(공저),『충남의 독립운동가』(공저) 등이 있다.

목차

1. 자본주의를 둘러싼 사상사적 배경
자본주의와 인성론
유럽 전통의 반상업적 정서
근대 시민법 정신의 대두
시장과 도덕감정의 조화
2. 자본주의의 탄생과 현상
임금 노동자의 탄생과 노동 가치의 변화
경쟁 지상주의와 구조 조정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신의의 상실
빈곤의 확산과 부의 편중
나비효과
3. 성장론에 대한 검토
허위 욕구와 참 욕구
끝없는 욕망과 이웃효과
나라의 부가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
행복을 재는 다양한 척도
4. 인간의 특성
이타적 유전자
호혜적 인간
지식인, 자본주의를 지키는 파수꾼
‘지식사회’의 등장
5.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
행복한 사회를 위한 다양한 사상들
인성이 완성되는 과정
덕성 함양을 위한 제언
6.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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