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저자가 소년 시절 보았던 가죽 한 조각에서 시작된다. 파타고니아에서 왔다는 그 동물의 가죽 조각은 곧 없어지지만, 소년 채트윈의 마음은 이미 파타고니아의 묘한 마력에 사로잡혀 있었다. 30대 중반, 마치 운명처럼 채트윈은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그가 그곳에서 만난 것은 웨일스 인, 유고슬라비아 인, 갈리시아 인, 러시아 인, 스코틀랜드 인, 보어 인 이주민들과 파타고니아 왕국 건설을 꿈꾼 남자, 미국에서 도망쳐 나온 갱단, -그 유명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러시아 인 망명자, 독일인 공상가, 천재 학자, 스페인 무정부주의자, 지금은 모두 절멸한 선주민 인디오, 그리고 이 여행의 수로 안내인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자 채트윈의 할머니의 사촌 찰리 밀워드 선장. 고생물 밀로돈과 신화의 유니콘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넘어 주마등처럼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기행문의 경지를 넘어선 인간의 삶, 역사와 땅에 대한 이야기
《파타고니아》는 내용이나 스타일 면에서 기행문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채트윈이 아니라, 채트윈의 세상 속에 이 세계가 존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파타고니아》가 담고 있는 것은 일상적인 여행지의 풍경과 묘사가 아니라 그곳의 역사와 인물들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학과 철학이, 그리고 고향을 등진 자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재담가인 채트윈을 통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개되고 있다. 파타고니아와 고대 동물의 이야기에서부터 중세 대항해 시대를 거쳐 격동의 현대 남아메리카 역사를 엮어 불과 몇 쳅터에 담아내는 채트윈의 역량에, 미국의 유명한 작가 '존 업다이크'도 ""종이 몇 장으로 세상을 담은 작가""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채트윈의 글은 우리가 여태 보아왔던 상식적인 내용 전개 방식과 글쓰기를 뛰어넘는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짧은 단편 하나에도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고찰이 묻어나 있는 까닭이다.
방랑을 노래하라 방랑자들의 종착역 파타고니아
채트윈은 왜 하필 파타고니아로 떠났을까? 여기에는 한 짐승의 붉은 가죽에 얽힌 유년의 기억 그 이상의 이유가 존재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타고니아는 방랑과 이민의 땅이기 때문이다.
방랑 정신. 그것은 채트윈이 모든 작품에 있어 궁극적으로 노래하고자 하는 대주제였다. 채트윈과 절친했던 《악마의 시》의 저자 '살만 루슈디'는 ""방랑에 대한 글을 쓰는 일, 그것은 채트윈에게 있어 영원한 과제요 업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채트윈은 인간의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요 방랑이라고 생각했고,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이 투명하게 반영된 것이 바로 《파타고니아》이다.
채트윈을 매혹시킨 것은 파타고니아라는 땅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사람들이었다. 그에게 있어 파타고니아는 빙산과, 바람 부는 초원에 사는 과나코와 귀여운 펭귄들이 사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방랑자들의 마지막 종착지요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은신처였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하고 열정적인 필력
채트윈은 눈에 보이는 것들의 진면목을 포착하여 그것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고착화하여 묘사할 줄 아는 헤밍웨이와 같은 기교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한 냉소와 위트가, 때로는 도덕적인 고찰이 묻어나 있다. 그는 픽션의 내용마저도 자신이 모두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이 책은 남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에 대해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이 되었고, 첫 출간 이래 25년간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직도 많은 여행가들과 탐험가들이 먼지 낀 배낭에 시꺼멓게 탄 얼굴을 한, 마치 순례자와도 같은 한 파타고니아 여행가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아르헨티나와 칠레 깊숙이 숨어 있는 이 땅을 찾고 있다.
브루스 채트윈 (Bruce Chatwin)
1940년, 영국의 사우스요크셔 주의 셰필드에서 태어났다. 말버러를 졸업한 후, 소더비즈(Sotheby's)의 수위로 입사해 8년 후 유능한 미술 감정가가 되었다. 일을 통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예술 작품을 접했던 채트윈은 1966년 소더비즈를 그만두고, 에든버러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1972년부터 3년간 》선데이 타임스》의 기자로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한 통의 전보를 남기고 떠났다. ""6개월간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이 여행은 그의 책 《IN PATAGONIA》에 영감을 불어 넣어주었고, 이 책으로 작가로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여행을 사랑한 채트윈은 중국 여행 중에 앓은 풍토병이 원인이 되어 1989년 1월, 애석하게도 재능을 다 꽃 피우지 못하고 요절했다. 37세로 데뷔하여 48세에 생을 마감한 그의 작가 인생은 몇 가지 에피소드와 함께 전설화되었다. 소더비즈 시절, 약관 18세의 나이로 피카소의 모작을 가려냈다 등. 대표작으로《The Viceroy of Ouidah》, 《On the Black Hill》, 《The Songlines》, 《Utz》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