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착각이 들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사랑 같다는 착각
설마 또 그럴까 하며 잡았던 송 마담과의 점심약속.
이런! 또 말려들고 말았다. 그녀에게 짝을 지어주지 못해 안달이 난 엄마의 술수에.
집 앞 슈퍼 가듯 부스스한 몰골의 한 여자와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마주하다.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 그녀와 달리 대놓고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 그.
멋대로 말을 끊는데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사람 비꼬는 재주를 가진 남자.
괜히 신경을 건드리는 그가 그녀는 재수 없다.
“송 마담이 어디까지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나 애인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윤사야 씨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하나도 틀리지 않단 걸 잘 증명하며 살고 계시다?”
앞뒤 맞지 않는 대답으로 이죽대는 이 남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
향기만 좋을 뿐, 맛은 그저 쓰기만 한 원두커피 같은 남자랑 다시 마주앉아 으르렁대는 사야.
“또 딴 생각합니까?”
“네? 아, 그게 아니라.”
“최악의 매너란 거 압니까? 너는 짖어라 이겁니까. 사회성 부족하단 소리 듣지 않아요? 윤사야 씨?”
“어쩌죠? 이번에는 제가 먼저 일어나야할 것 같네요. 우리 일이 이렇습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군가의 마지막을 알리는 전화가 오면 달려가야 하죠.
한 일주일은 또 바쁠 것 같으니 내 연락 없다고 서운해 하지 말아요, 사야 씨.”
“이봐요! 야, 정여욱!”
매번 잊는다. 이 커피란 것은 향기만 그럴싸한 물건이라는 걸.
가까이하거나 입을 대면 절대 후회밖에 남지 않는 물건이라는 걸.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어떻게든 잊고 잘 살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 남자 끌어안고 있더라, 그때랑 똑같이.”
“테이프가 와, 엄마. 오빠가 찍은, 오빠가 담긴 테이프가……
하나씩, 둘씩…… 배달돼 온단 말이야아…….”
―사람들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남자, 정여욱.
―빛바랜 사랑과 추억을 쓰는 여자, 윤사야.
남겨진 자들의 숙제, 천사와 커피를 마시다.
김효수의 로맨스 장편 소설 『천사와 커피를 마시다』.
김효수
-닉네임/ 비내리는
흔한 이야기를 흔하지 않게 풀어내고,
흔치 않은 이야기를 흔히 공감할 수 있게 하며
뻔한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하고,
예상치 못한 결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출간작/
금란지의, 그 아슬아슬한
처음부터 너였다
휘황찬란 네 오빠와 은옥공주
백조의 난
수컷 인어 이야기
해오라비 난초
뭐 이런 경우가!
#프롤로그_ 개똥밭에 굴러도
#01_ 그가 나를 살게 해요
#02_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나요
#03_ 당신은 내가 안은 여자입니다
#04_ 기억이 넘쳐흐르다
#05_ 없는 사람 취급하진 마
#06_ 미안해할 거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어
#07_ 밀려든 파도에 모래는 다시 젖고 만다네
#08_ 혹시 내가 하고 있는 이것도 짝사랑이니?
#09_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10_ 죽음과 마주하다
#11_ 네게 남은 그 사람이 네 운명이라면
#12_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The Past Story_ 그 남자 이야기
#An After Story_ 사야와 여욱의 이야기
#작가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