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극장문화사』는 극장의 흔적을 쫓아 전라남북도의 도시들을 뙤약볕 아래를 걸어 돌아다닌 저자의 땀의 결실이다. 2006년 4월부터 2007년 1월까지 당시 극장 운영자, 영사기사, 변사, 순업 종사자 등 62명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하였다. 그 결과 당시 극장의 생성과 소멸 시기, 상영되던 영화 작품, 각종 공연단과 공연 작품, 영화사와 공급사, 영사기사, 순업 전문가, 변사 등 한국 영화사나 공연사에 빠져서는 안될 기록들을 꼼꼼히 수록해 놓고 있다. 대형 음식점이나 나이트클럽, 주차장으로 변해 버린 ‘추억’의 극장들을 그 위치와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약도로 그려 놓는 ‘친절’도 베풀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고 극장을 사랑하는 한 영화학도의 ‘소박함과 무모함’에 경탄하게 된다.
저자는 호남 지역의 극장 문화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 변사의 연행, 영화와 같이 무대에 올랐던 인접한 대중예술, 읍면 단위의 지역을 돌던 순업, 그리고 영화 마케팅의 방법이었던 각종 쇼, 배급사와 흥행사 등을 알아보고, 그리고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각 시군의 극장 순례를 떠난다.
판소리와 굿으로 대표되는 구술문화 전통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는 호남 지역에서 특히 변사가 영화 수용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변사는 영화가 제시하는 서구와 근대라는 낯선 볼거리를 관객에게 소개하면서 근대성의 충격적인 경험을 완화하고, 지역의 토착 문화를 반영하여 영화를 재해석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호남의 관객들은 스크린을 벗어나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감정을 교류하고 공연에 참여하는 현장성이 살아 있는 변사 연행의 영화를 특히 좋아했다.
호남 지역의 영화는 당시 극장 무대에 자주 올랐던 인접 대중예술을 소개한다.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한국 영화 제작 상황은 극히 열악했기 때문에 극장 무대는 할리우드 영화나 연극과 악극, 창극, 여성국극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여성국극단 가운데 호남에서 가장 인기를 누렸던 단체는 함평군 출신의 임춘앵이 이끄는 극단이었다. 악극의 경우, 대표적 인물은 전옥이었다. 1950년대 전옥의 ‘백조악극단’ 공연은 극장가의 흥행 보증수표였다. 연쇄극에서부터 영화배우들의 특정 장면의 실연, 진기한 볼거리의 전시를 의하던 ‘아도로꾸 쇼’와 악극 공연의 막간을 이용하여 노래와 만담을 들려 주는 형식의 ‘바라이디 쇼’도 흥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호남 지역의 영화는 인접 예술과의 교섭?갈등?타협하며 수용되고 발전되었음이 밝혀진다.
호남의 읍면 단위 시골 마을 지역민의 영화 관람 욕망을 채워 준 순업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1950년대 호남의 순업 일행은 변사 동행이 필수였는데, 낡은 여사기와 자막 없는 필름, 그리고 영화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시골 마을 관객들 때문이었다. 순업은 대부분 7~8명의 개인이 모여 팀을 꾸려 운영했지만, 상설관을 운영하는 극장 운영자들도 극장 운영과는 별개로 ‘순회영화반’을 두어 순업에 동참하였다. 섬이 많은 호남의 해안 지역에서의 순업은 외딴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였고, 호남 지역 영화 수용의 한 특징이다.
‘호남의 극장문화사’를 다루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영화배급사와 그들의 활동도 소개된다. 지방에서의 제작 자본 형성으로 서울에서 영화 제작이 이루어졌던 당시 상황은 영화산업 발전에 있어 지방 영화배급사의 역할이 중요하였다. 지역 관객들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던 지방 흥행사들은 제작 자본 제공을 전제로 제작사에게 특정 배우의 출연을 요청하거나 특정 스타일의 영화 제작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어 전라남북도 28개 시군에 소재했던 극장들의 변천사를 다룬다. 극장 설립연도, 극장운영자, 영사기사, 기도, 상영되던 영화, 공연예술 단체 등 추적하면서 당시 영화가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되었는가를 밝혀 낸다. 이 과정에서 흥행에 실패하여 지불할 여관비도 없어 밤중에 도망간 공연단체, 극장주의 영화 검열, 영화 상영 도중의 정전, 지역을 따라 순차적으로 필름이 배급되던 당시 필름이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는 동안의 재미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소개된다.
그러나 호남 지역 극장의 흥행은 1970년대 흑백 TV가 보급되고 방송 드라마가 인기를 누리면서 위축되기 시작하다가, 컬러 TV가 등장하자 결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한다. 교통의 발달과 관광 상품 등 실외 대중오락의 등장과 맞물려 영화 및 극장 산업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호남 지역의 극장 순례를 마친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1950~1970년대 호남 지역의 극장은 영화 이외의 무대 공연예술이라는 볼거리가 전시되고 구경꾼이 몰리는 공간이었다. 관객은 영화와 공연을 보며 실물을 확인하고 참여하며 공감의 정서를 경험하였다. 또한 도시문화의 대체 경험인 영화 관람이 이루어지는 극장은 근대적 규율을 습득하고 교육과 계몽이 이루어지는 근대 ‘문화’ 공간이었다. 호남의 극장은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문화의 서로 다른 스타일과 형식, 그리고 이것을 둘러싼 다양한 층위의 가치와 제도가 충돌, 갈등하고 타협하면서 새로운 이해가 발생하는 공간이었다.
저자는 서울 이외의 지역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영화 수용 문화의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성격을 해명하고자 하고 있으며, 한국 영화사 연구의 외연 확대와 창조자로서의 호남 지역민의 정체성 발견과 규명에 기여하길 바라며 이 책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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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들어가는 말
제1장 호남과 극장
1. 호남 문화의 특성
2. 극장一전시와 구경, 공감의 공간
제2장 호남의 극장 문화
1. 변사一구술 전통과 문화 번역
2. 인접 예술과의 소통
(1) 영화 이외의 무대공연 예술
(2) ‘아도로꾸쇼’와 ‘바라이디쇼’
(3) 극장의 쇼 무대화
3. 극장 무대 밖 대중오락一서커스
4. 순업一’로뗀바리’
(1) 개인 주체의 순업
(2) 상설관 주체의 ‘순회영화반’
(3) 지역성에의 호소
5. 지방배급사 또는 지방흥행사
(1) 1960년대 호남의 극장 수 증가
(2) 1950년대~1970년대 호남의 배급사
(3) 지방흥행사와 극장주의 관계
(4) 지방흥행사와 제작사의 관계
제3장 1950~1970년대 전남의 극장
1. 전남 지역 극장
2. 서해안 지역
(1) 목포시
(2) 함평군
(3) 영광군
3. 남해안 지역
(1) 진도군
(2) 완도군
(3) 해남군
(4) 장흥군
(5) 영암군
4. 동부 지역
(1) 순천시
(2) 여수시
(3) 광양시
(4) 고흥군
(5) 보성군
5. 내륙 지역
(1) 나주시
(2) 화순군
(3) 담양군
(4) 곡성군
(5) 구례군
제4장 1950~1970년대 전북의 극장
1. 전북 지역 극장
2. 군산시
(1) 식민시대 군산의 극장
(2) 해방 이후 군산의 극장
(3) 군산극장
(4) 남도극장
3. 전주시
(1) 1950년대 전주시의 극장
(2) 해방과 1950년대 전북의 영화 제작
(3) 1960년대 전주시의 극장
(4) 1950~1970년대 전주시의 극장 문화
4. 전북 시 단위 극장
(1) 남원시
(2) 익산시
(3) 정읍시
5. 전북 군 단위 극장
(1) 고창군
(2) 부안군
(3) 무주군
(4) 장수군
(5) 순창군
나오는 말
부록
참고문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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