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 사람들의 인적 네트워킹을 밝혀 놓다
대한민국 최고의 원림(園林) 소쇄원에 관해서는 조경과 건축, 문학 분야의 깊이 있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정원을 지은 사람과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지 못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 소쇄원을 짓고 재건한 양산보와양자징?양자정, 양천운 3대와 그곳을 드나들던 송순ㆍ김인후ㆍ기대승ㆍ정철ㆍ고경명ㆍ김성원 등과의 교유 관계를 밝힌 것이다. ‘소쇄원 사람들’이 가정, 관직,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희로애락이나 생로병사, 충효우애에 관한 기록이다.
소쇄원에 몰입하여 지내는 저자 김덕진 교수(광주교육대학교)는 현재 소쇄원을 지키고 있는 건립자의 후손 양재영을 인터뷰하고 관련 문헌을 샅샅이 조사하여 지연, 혈연, 학연 관계로 얽히고설킨 양씨 일가 7대의 인적 네트워크를 밝혀 놓는다. 그 인적 네트워크가 소쇄원을 짓고 관리하고 재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정쟁과 전란으로 어지럽던 16~17세기 호남의 역사문화를 ‘소쇄원 사람들’의 사상, 활동을 추적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먼저 공간배치 등 소쇄원의 건축 및 조경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양사원, 양산보, 양자징?양자정, 양천운, 양몽우, 양진태, 양채지 등 양씨 일가 7대에 걸친 ‘소쇄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그중에서 양산보, 양자징?양자정, 양천운 3대의 이야기가 줄기를 이루며 전개된다.
‘소쇄원 사람들’의 첫 번째는 당연히 건립자 양산보(1503~1557)이다. 조광조 문하에서 수학한 양산보는 기묘사화가 발생하자 곧바로 고향으로 내려와 산수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에 새로운 거처지를 마련하여 ‘소쇄원’이라 하였다. 그는 관직을 사양하고 처가 김윤제, 외가 송순 등 주변 사람들의 경제적 후원을 받아 20년 가까이 소쇄원 증축에 몰두하였다. 호방한 성격의 ‘소쇄처사’ 양산보는 특히 김인후와 각별했다. 하서 김인후와는 달을 넘기며 돌아갈 일을 잊은 채 경서를 토론하거나 술잔을 주고받으며 시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김인후는 소쇄원을 자주 들러 연못의 물고기가 자기를 알아볼 정도였다 한다. 이들의 두터운 우정은 김인후가 남긴 『하서전집』에 양산보와 관련된 시가 80수에 이른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다음 ‘소쇄원 사람’은 양산보의 둘째 아들 양자징(1523~1594)이다. 그는 늦게 결혼하여 3남 3녀를 두었는데, 기축옥사에 휘말린 두 아들과 임진왜란 때 고경명과 함께 의병 봉기한 사위 안영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는 비운을 겪었다. 그는 수령을 역임해 선정을 펼치기도 했지만, 소쇄원 안에 고암정사를 건립하여 지역 엘리트들과 활발히 교유하였고, 조선 내 유례를 찾기 힘든 학구당이라는 교육기관을 창건하여 지역 사회의 학문 발전과 후진 양성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양자징은 아버지에 이어 김인후와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김인후의 문하에서 조희문?기효간?변성온 등과 함께 수학하였고, 스승의 딸과 결혼하여 사위가 되었으며, 후에 수제자로 필암서원에 스승과 함께 배향되었다.
양산보의 셋째 아들이자 양자징의 동생 양자정(1527~1597?)도 소쇄원에 부훤당이라는 개인 서실을 건립하였고, 당대의 명사들과 깊게 사귀었다. 특히 양자정은 김성원?고경명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이들 3인은 무등산 자락의 풍계 계곡과 서봉사, 식영정을 오가며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주고받은 횟수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한다.
끝으로 양산보의 손자이자 양자징의 셋째 아들 양천운(1568~1637)이다. 그는 기축옥사로 천경과 천회 두 형을 잃어 셋째였지만, ‘소쇄원가’의 주인공 역할을 맡아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소쇄원을 중수하였다. 또한 정쟁과 전란으로 혼자 남아 의지할 곳 없는 형수, 조카, 누이들을 거두어 극진히 호구하였다. 그는 성계 우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같이 공부했고 병자호란 때 주전론으로 유명한 김상헌과 친분이 각별했다. 광주 목사 조희일, 동북 현감 강위재 등 인근 고을 수령들과의 관계도 긴밀했다.
‘소쇄원 사람들’은 아름다운 원림 소쇄원을 드나들며 자연을 벗삼아 사유하고 논쟁하고 우정을 나누고 절의를 다졌다. 이들은 또한 지역 인재 양성에도 열성적이었다. 이러한 ‘소쇄원 사람들’의 활동은 16~17세기 호남의 역사문화를 꽃피우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소쇄원 사람들』은 당시 시대 상황도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소쇄원 사람들’이 연루되었던 기묘사화와 기축옥사, 그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혼란을 통해서는 당시 당쟁의 극심함과 전란의 참혹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양천경의 부인과 어린 세 자녀가 일본에 끌려갔다가 20년 만에 쇄환사의 노력으로 귀국하는 과정은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은 방대한 자료와 연구를 토대로 탄생한 것이지만, 저자는 이 책이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소쇄원 사람들’ 전체 가계도를 먼저 실었고, 뒤에 각 인물의 가계도를 실어 인척 관계를 한눈에 알아보도록 하였다. 또한 『소쇄원 사실』 「소쇄원도」 『소쇄원48영』 『그림으로 다시 보는 48영』 등 참고문헌, 고지도, 관련 사진들을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부록으로 ‘소쇄원 사람들’의 연표를 실어 다른 연구자들도 참고하면 도움이 되도록 세심하게 신경썼다.
저자는 이 책이 좀더 연구할 부분이 있지만, 그동안 조경과 건축, 문학 분야에 집중되었던 소쇄원 탐구가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넓은 시각에서 연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18세기 이후 다시 활발한 활동을 펼친 ‘소쇄원 사람들’에 대한 연구도 계속해서 내놓겠다고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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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머리말
제1장 한국의 대표적 별서 소쇄원
1. 별서의 기능과 공간
(1) 조선 사대부의 문화 공간
(2) 자연을 벗삼아 노니는 특별 거주지
2. 호남의 누정과 소쇄원
(1) 정치?사회?학문적 활동 공간
(2) 향촌 활동의 중심지
3. 한국의 명원 소쇄원
4. 소쇄원 둘러보기
제2장 제주 양씨의 가계와 창평 정착
1. 제주 양씨의 기원과 분파
2. 족보와 가계 기록
3. 나주에서 광주로 이주
4. 짧은 만남, 긴 인연
5. 창평에 정착
제3장 양산보의 기묘사화 체험과 소쇄원 건립
1. 양산보의 출생과 혼인
2. 사화로 날아간 꿈
(1) 조광조 문하 입문
(2) 기묘사화와 낙향
3. 양산보의 소쇄원 건립
4. 소쇄원에 담긴 사상
5. 소쇄원과 호남 사림
제4장 양자징의 학구당 건립과 필암서원 추배
1. 노년의 관직 생활
2. 늦은 결혼과 슬픈 가족들
(1) 늦게 한 결혼
(2) 정여립 사건에 휘말린 가족들
(3) 왜란에 희생된 가족들
3. 양자징의 향촌 활동
(1) 학구당 창건
(2) 고암정사 건립
4. 양자징의 필암서원 추배
(1) 소쇄원과 김인후
(2) 김인후와 양자징
(3) 필암서원과 양자징
제5장 양자정의 부훤당 건립과 친구들
1. 풀리지 않는 죽음
2. 얽히고설킨 인연
3. 부훤당 건립
4. 다정한 친구들
(1) 오랜 친구 김성원
(2) 새 친구 고경명
5. 양자정과 서봉사
제6장 왜란과 소쇄원 사람들, 그리고 소쇄원
1. 임진왜란과 소쇄원 사람들의 창의?순절
2. 정유재란과 소쇄원의 물적?인적 피해
(1) 일본군의 창평 점령
(2) 소쇄원의 소실
(3) 소쇄원 사람들의 창의?순절
(4) 소쇄원 사람들의 피로?송환
제7장 양천운의 소쇄원 중건과 호란 의병
1. 가족 관계와 정치 활동
(1)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의 자녀들
(2) 짧은 정치 활동
2. 왜란 체험과 전후 복구
(1) 친족 구호
(2) 소쇄원 중건
3. 소쇄원에서의 사회 활동
(1) 한천정사 건립
(2) 호란 의병 봉기
맺음말
부록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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