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태클이 들어온 순간,
나는 비겁하지 않을 수 있을까.”
11년의 기자 생활에서 배운 인생살이의 기술과
펜 끝의 권력을 내려놓고 찾는 소소한 일상의 가치
“좋은 삶의 목표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보다
이런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것”
“정의롭지는 않더라도 부끄럽게 살기는 싫어”
넘어지기 쉬운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남는 기술
일상생활은 감정이 한순간 타올랐다가 사그라드는 ‘울컥’의 연속이다. 회사에서는 후배라는 이유로 별 것 아닌 일에 혼이 나고, 길 위에서는 택시와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막말을 듣기도 한다. 기자 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도 늘 울컥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주하고야 마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흔들림 없이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한때 선망받는 직업이었던 기자는 어느 순간부터 국회의원과 함께 가장 많은 손가락질을 받는 직업이 되었다. 펜 끝의 권력을 쥐고 약자의 편에 서기보다는 강자를 대변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스물다섯 살에 한 방송사 보도국 최초의 여기자로 입사해 중앙일간지로 자리를 옮겨 10년 넘게 기자로 일한 정민지 기자 역시 늘 이 점을 고민했다.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대의명분으로 기자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부끄러운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사회부?경제부?산업부를 넘나들며 오랫동안 글밥을 먹는 동안 매순간 자신을 돌아봤지만 어쩐지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는 놓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치열한 취재 현장을 뛰어다니고 회사에서 중간 자리까지 올라가니 참을 수 없는 순간이 나날이 늘어갔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마주한 울컥한 순간들을 하나하나 모았다. 기자로서, 여자로서, 직장인으로서 쌓인 감정의 파편들은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라는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비록 생채기가 나더라도
나의 중심은 단단히 지키며 살고 싶다
‘울컥’하는 감정은 하나로 흐르지 않았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서, 때로는 깊숙한 곳에서 먹먹함이 올라와 목이 메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참석한 회식에서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라고 요구한 선배에게 “그렇게 노래가 듣고 싶으면 도우미를 부르시라.”고 소리쳤을 때, 신입사원은 모든 사람에게 인사해야 한다는 말에 “인사는 꼭 아랫사람이 먼저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따져 물었을 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다. 사촌동생의 사고로 인해 찍는 사람에서 찍히는 사람으로 자리가 바뀌었을 때는 마음이 미어졌고, 억울한 일을 제보받아도 증거 불충분으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때는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녀는 이 감정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사회에서는 내가 가진 원칙을 훼손하는 태클이 너무나 많았고, 상식 아닌 것을 상식이라고 들이미는 조직의 논리는 나를 자주 힘들게 했다. (…) 내가 울컥하는 순간들도 나란 존재를 지켜주는 단단한 중심이었다. 그렇게 나는 겉은 물러서 생채기가 날지언정 내 중심만은 단단하게 지키며 살고 싶었다.
그녀가 이런 일을 쓴 것은 단지 기자로서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는 아니다. 바쁘게 살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가 정작 필요한 작은 가치를 놓치는 수많은 사람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다. 연말 회식에서 손가락이 부러진 지도 모른 채 자리를 지켰던 그녀는 ‘감정에 게을렀기 때문에 몸이 휴식 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상처 입지 않도록 늘 단단한 마음으로 살려고 했으나 어느덧 감정 살피기에 한없이 게을러진 자신을 돌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제는 행복을 깨뜨리는 사람은 멀리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조금 더 충실하기로 했다.
기자라는 직업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 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소중한 가치를 붙잡겠다는 결심, 여자로서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결국 하나뿐인 삶을 잘 돌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녀가 오랜 시간 끝에 찾은 이 깨달음은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1982년 5월생.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방송사와 종합일간지에서 사회부·경제부·산업부 기자로 11년을 일했다. 사회부에 있을 때 고발 프로그램 PD를 하기도 했다. 스물다섯 살부터 글밥을 먹으면서 날이 무디게 기사를 쓰는 날이면 질문하는 권력을 허투루 쓰고 있는 건 아닌지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부서 회식자리에서 손가락이 부러진지도 모른 채 만취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직장 생활에 회의감이 몰아쳤다. 그날 이후 몇 달이 흐른 2018년 봄에 회사를 나왔다.
승부욕은 없는데 못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한다. 말로는 대충 살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타공인 성실한 유형의 인간이다. 책을 좋아하지만 다 읽고 나면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허술한 행동을 많이 해서 전자기기를 자주 망가뜨리고 가끔은 상추를 뜨거운 물에 씻는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고 클라리넷을 조금 불 줄 안다.
브런치 @mandoo1505
프롤로그│겉은 말랑하게, 중심은 단단하게 산다는 것
1.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관성대로만 사는 것은 고장난 삶이 아닐까
머리를 탬버린으로 내리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는 비겁해지는 법을 먼저 배웠다
인사는 왜 꼭 아랫사람이 먼저 해야 하나요?
회장님, 전 꿈이 없는데요
조직에서 톱은 어떻게 되는가
정확한 질문을 던져야 정확한 답을 얻는다
찍는 사람에서 찍히는 사람으로
나의 사소하지만 부끄러운 시간들
2. 오늘도 참고 말았습니다
타인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피는 일
얼굴에 기-스 좀 생기는 게 어때서요
신부도 앞에서 하객 맞는 게 어때서
경쟁하지 않고 온전히 얻어낸 행복
인생이 답답할 땐 뭐 하세요?
고통 앞에서 나 이외에는 완벽한 타인
폭력과 직면하는, 택시라는 공간
작은 것에도 쉽게 꺾이는 마음
상추를 뜨거운 물에 씻어도 며느리는 며느리
평범한 날을 버티게 하는 ‘퍼지 데이’
슬로우 스타터를 위해 열 살씩 내려주세요
합리적이라고 믿는 순간이 가장 비합리적일 수 있다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 절밥이라도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기자의 갑질
3. 오늘도 부끄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가난은 죽음의 순간마저도 가장 고통스럽게 한다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서 삶을 배운다
타인을 할퀴는 특별함보다 평범함의 위엄을
최선을 다해 비틀즈를 던졌다
미안하지만 친절이 주업무는 아니니까요
끝없는 달리기의 경주마로 산다는 것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아이들과의 여행
사장님, 그렇다고 염산을 마십니까
살아 있는 너희들을 묻는다는 것
눈이 머는 순간을 지나는 남자와의 인터뷰
타인의 불행을 관망하는 삶
4.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갑니다
몸과 마음이 부서졌을 때는 어게인에서, 어게인
감정에 게으르면 휴식 선언은 몸이 한다
빈손으로 떠나온 그날의 오후
행복을 깨뜨리는 사람을 거절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
단독 특종보도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의 삶에도 어떤 용기가 생겨나길
에필로그│질문이란 권력을 내려놓은 어느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