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성군으로 기록된 이유는 위대한 ‘업적’ 때문”
인성·사생활을 기준으로 들여다본 조선 왕들의 민낯
“공부는 안 하고 건달들하고 어울려서 뭐 하는 겁니까?”
“야, 누가 너하고 놀자고 그랬냐? 왜 따라다니면서 간섭이야!”
“옷은 그게 뭐예요? 외모에 신경 쓸 시간에 마음부터 닦아야죠.”
“아는 거 많은 너나 도 많이 닦아라. 나는 노는 거로 쭉 나가련다.”
“노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남의 여자는 왜 자꾸 건드려요?”
“네가 또 아버지께 일렀지? 하여튼 자식, 틈만 나면 고자질이야.”
누구의 대화일까? ‘범생이’ 동생과 ‘건달’ 형. 600년 전 당시 17살이던 충녕대군(세종대왕)과 20살의 양녕대군이다. 세자 신분이었던 양녕대군은 ‘국민 난봉꾼’이었고, 충녕대군은 ‘국민 범생이’였다.
양녕대군이 장안에서 인물 꽤 있다는 여자는 죄다 쫓아다니며 왕실 망신을 시키자, 충녕대군은 집안 노비들을 총동원해 양녕대군을 감시하고 나섰다. 양녕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면 어김없이 부왕에게 일러바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범생이 동생은 난봉꾼 형을 밀어내고 왕위를 계승해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남았다.
세종이 성군으로 기록된 것은 한글 창제와 과학 혁명 등 그의 위대한 업적에 따른 것이다. 세종뿐 아니라 우리가 역대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항상 그들의 업적이었다.
문제는 때론 그 업적 덕분에 인품까지 위대하게 포장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인품이 훌륭하진 않듯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이라고 해도 반드시 뛰어난 인성을 지닌 것만은 아니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 박영규는 이 점에 착안해 신간 《조선 왕 시크릿 파일》을 집필했다. 업적이 아닌 인성과 사생활을 잣대로 삼아 조선 왕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시도한 것이다.
‘혁명가’ 이성계? 자식에겐 ‘아들 바보’, 아내에겐 ‘공처가’
조선 왕을 논할 때 흔히 태조 이성계는 전장에 나가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위대한 장수이자 목숨을 걸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과감한 혁명가로 묘사되곤 한다.
그 바람에 이성계가 어떤 인성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는 간과하기 쉽다. 이성계뿐 아니라 다른 조선 왕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성계는 ‘아들 바보’였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성계는 아들 자랑에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 팔불출이었다. 거기다 젊은 아내의 말이면 끔뻑 죽는 공처가였다.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를 격살하고, 왕자의 난을 일으켜 조선 왕조의 기반을 마련한 사실로 봐서는 용맹하고 기개가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그는 부모에겐 원수 같은 자식이었고, 아내에겐 빵점짜리 남편이었으며, 자식에겐 권위적인 아비였다. 또한 우애 없는 형제였고, 의리 없는 친구였다.
세종이 며느리 4명을 쫓아낸 까닭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은 어떨까? 인자하고 자애로울 것만 같은 세종이 며느리를 넷이나 내쫓기도 했다. 이유가 뭘까?
‘주요순 야걸주’, 즉 ‘낮에는 요순, 밤에는 걸주’라는 별명을 가진 왕이 있었다. 낮에는 중국의 최고 성군인 요·순 임금 같은 성군인데, 밤만 되면 걸왕과 주왕 같은 색마가 된다는 뜻이다. 누굴까? 뜻밖에도 성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수대비 같은 엄한 어머니를 둔 성종이 어쩌다 그렇게 불렸을까?
묘호를 살펴보면 그 왕의 삶과 딱 맞는 경우가 있다. ‘두 얼굴의 사나이’란 별명을 가진 중종中宗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종의 ‘중中’ 자는 가운데를 의미하는 한자이지만 얼핏 봐도 얼굴을 둘로 나눠놓은 모양이다. 중종은 중용의 도를 실현한 왕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행동 방식이 다른 다중인격자 성향을 보였는데 기가 막히게도 이런 사연을 담은 듯 묘호가 붙었다.
또 중종의 아들 명종明宗은 ‘밝을 명明’ 자를 쓰는데, 실제로는 ‘울 명鳴’ 자를 써야 했지 않을까? 그는 조선 왕 중에 이름난 마마보이였고, 재위 기간 중 모후 문정왕후 때문에 눈물로 보낸 세월이 많았다.
‘차별 군주’란 별명이 어울리는 왕이 있다. 바로 영조다. 영조는 자녀들을 무척 차별했는데, 심지어 좋아하는 자녀와 싫어하는 자녀를 한자리에 앉지도 못하게 했다.
우리가 알던 이미지와는 다른 조선 왕들의 품격
이들 왕 외에도 선조, 인조, 효종, 현종, 숙종도 우리가 익히 알던 이미지와는 다른 점이 많다. 저자는 어쩌면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조선 왕들은 일군의 작가와 연출자에 의해 가공된 캐릭터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 캐릭터 대다수는 권선징악의 뻔하디 뻔한 필법 아래 선과 악으로 나뉘어 열연을 펼쳐왔고, 그들의 열연 아래 당대의 모든 역사 인물도 흑백으로 갈라져 연극을 지속해온 건 아니었을까? 저자가 “지금까지 알던 조선 왕들은 잊어라!”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저자는 자신의 분석과 평가가 모두 옳을 수는 없다고 언급한다. 다만 지금껏 조선 왕들에게 들이댔던 업적이란 잣대를 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을 다시 한 번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그들 조선 왕들이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나 개인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누구에게나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은 있기 마련이다. 조선 왕들 역시 저자가 찾아낸 내용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이 감춰놓은 비밀이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는 열쇠라면 그것은 결코 비밀로 남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1998년에 중편 「식물도감 만드는 시간」으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작품으로 후삼국시대를 다룬 대하소설 『책략』(전5권),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 『길 위의 황제』, 장편 『그 남자의 물고기』 등을 출간했으며, 단편 「쥐 부처」 「미운 오리 새끼」 「시지프스의 바위」 「비련」 등을 발표했다.
문학작품 외에 200만 베스트셀러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고려,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왕조사와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실 계보』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한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까지 아홉 권의 ‘한권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를 22년 동안 펴냈다.
이외에도 『조선반역실록』 『조선붕당실록』 『조선전쟁실록』 『조선명저기행』 『조선관청기행』 『조선왕 시크릿 파일』 『정조와 채제공, 그리고 정약용』 『환관과 궁녀』 『박영규의 고대사 갤러리』 『춘추전국사』 등의 역사서를 썼다.
프롤로그 _ 지금까지 알던 조선 왕은 잊어라!
제1장 1대 태조_온건한 승부사, 배신당한 아비
세 어머니와 두 이복형제 | 재주를 알아본 서모 손에 자라다
넉넉한 풍채에 특별한 귀 | 너그럽고 친화적인 성품
타고난 담력과 빼어난 활 솜씨 | 위화도 회군에 인연 끊은 장남
왕의 여인들 | 자식 잃은 아비의 눈물 | 반란의 배후가 되다
제2장 3대 태종_영리한 책략가, 뒤끝 대마왕
영특한 기상, 허약한 체질 | 똑똑한 아들, 아비의 사랑을 받다
죽이 잘 맞는 계모와 정치적 동지가 되다 | 음흉한 인내력과 과감한 행동력
축첩에 눈먼 남편, 따지고 드는 조강지처 | 처남들을 제거하다
끈질긴 보복, 뒤끝 대마왕 | 양녕대군의 성 추문과 가차 없는 폐세자령
독존의 리더십
제3장 4대 세종_팔방미인, 깐깐한 가부장
궁중의 외로운 소년 | 세상이 알아주는 책벌레 | 큰형의 질투
망나니 형, 범생이 동생 | 인자한 성품, 실용적 인재관
때론 깐깐하고, 때론 너그러운 지아비 | 속 썩이는 두 아들
며느리를 내쫓다 | 먼저 보낸 자식들
제4장 7대 세조_음흉한 괴짜, 기분파 냉혈한
학문보다 무예를 좋아한 왕자 | 기분 좋으면 오케이, 아부에는 함박웃음
과시하길 좋아하다 | 농담과 진담을 넘나드는 괴팍함
숙이면 벼슬, 쳐들면 죽음뿐
제5장 9대 성종_낮에는 도덕군자, 밤에는 호색한
총명하고 고집 센 소년 왕 | 인재를 알아보는 혜안
밤 나들이를 좋아하는 임금 | 말 술의 호색한 | 여인들의 암투
제6장 10대 연산군_살 떨리는 낭만주의자, 살인귀
모정을 그리워하는 소년 | 영명한 세자, 잔인한 성정
공부를 싫어하다 | 회릉과 죽음의 잔치
팜므파탈 장녹수, 죽음을 부른 질투 | 살인귀
삼년상을 금하노라 | 대화금지법과 쓸쓸한 최후
제7장 11대 중종_우유부단한 이기주의자, 두 얼굴의 통치자
불안에 떠는 어머니, 무서운 형 |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다
부족한 결단력 | 두 얼굴을 한 왕
조강지처를 버리다 | 잘못된 판단
제8장 13대 명종_매 맞는 군주, 절망에 빠진 마마보이
무서운 엄마와 효심 지극한 형 | 마마보이 아들, 매 맞는 왕
화병을 얻다 | 하나뿐인 아들을 먼저 보내다
제9장 14대 선조_눈치 빠른 처세가, 영리한 현실주의자
일찍 부모를 여의다 | 용모가 뛰어나고 속 깊은 아이
비겁한 도주인가, 현명한 결단인가 | 뛰어난 재치, 발 빠른 임기응변
무명옷을 입는 검소한 임금 | 재주보다는 행실을 보다
후궁의 야망 | 내키지 않는 세자 책봉 | 적자 승계 과욕이 부른 참사
제10장 15대 광해군_가련한 영웅, 고독한 실리주의자
엄마 없는 설움 딛고 홀로 일어선 아이 | 영웅의 풍채에 위인의 기상
무리한 왕후 추존 | 아들·며느리와 아내의 죽음
18년의 귀양 생활 | 광해군은 부왕을 독살했는가?
제11장 16대 인조_불안한 군주, 좀팽이 아비
선조가 사랑한 첫 손자 | 입을 닫고 숨죽이며 살다
장남 소현세자를 두려워하다 | 강빈을 제거하라 | 아, 뇌졸중
제12장 17대 효종_아부를 싫어한 대장부, 도 넘은 효자
재주를 숨기는 소년 | 아첨하는 자와 공사 구분 못하는 자를 멀리하라
지나친 효심이 부른 잘못된 판단 | 검소한 낭군, 쫀쫀한 가부장
운명의 의료 사고
제13장 18대 현종_인정 넘치는 도인, 일편단심 민들레
배려심이 많은 아이 | 인정 많고 현명한 왕 | 후궁을 두지 않은 이유
딱 한 번의 외도와 홍수의 변 | 명성왕후의 또 다른 목적
제14장 19대 숙종_직진 기질 사랑꾼, 분노조절장애 정치꾼
인정 많고 명민한 아이 | 타고난 정치 천재
엄마의 벽, 먼저 보낸 아내 | 옥정이라는 이름의 궁녀
모후의 죽음과 돌아온 사랑 | 불굴의 직진 기질로 쟁취한 사랑
장옥정, 왕비가 되다 | 변심한 남자의 잔인한 선택
제15장 21대 영조_두 얼굴의 정략가, 고독한 가장
천비 출신 어머니, 마르고 왜소한 아들 | 가시방석 생활 30년
경종 독살설과 김춘택의 아들설
약한 척 접근, 원하는 바 이루는 두 얼굴의 전략가
여자 복도 자식 복도 없는 왕 | 마침내 얻은 아들
자식을 죽이다 | 늙고 병든 아비, 설치는 딸
제16장 22대 정조_절대군주를 꿈꾼 완벽주의자, 뒷거래 정치꾼
공포에 떨며 보낸 14년 | 광기에 사로잡힌 아비
자식을 살리기 위한 선택 | 복수가 시작되다
정조의 수호천사 | 뜻밖의 결정 | 정조의 이중 플레이
절대군주가 되기 위한 포석 | 심환지가 보관한 밀찰 |
완벽주의자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