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 일본, 꽤 괜찮은 참고서
일본은 우리보다 길게는 30년, 가깝게는 10년 정도 먼저 고령화가 진행됐다.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로 꼽히는 게 일본. 인국의 20% 이상이 65세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그게 2005년. 한국은 현재 14%.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베이비부머가 소위 ‘58년 개띠’를 중심으로 한 55-63년생이라면 일본은 45-48년생 ‘단카이세대’. 이들이 은퇴하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한다면 일본은 10년 전부터 고령화문제에 본격적으로 준비해온 것.
저자 김웅철은 매일경제의 도쿄특파원과 국제부장을 지낸 바 있는 일본통. 외국 연수가 흔치 않았던 1980년대 일본연수를 한 이래 30여년을 일본을 꾸준히 분석해왔다. 한국과 일본의 고령화 양상이 비슷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지난 6년간 일본의 고령화 트렌드와 정부, 기업의 대응 방안을 지속적으로 리포트해왔다. 이 책은 그 결과물로 크게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일본의 고령화 솔루션’.
나이 많은 노인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당면 과제들을 일본은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 현지에서 주목받고 있는 성공 사례들을 모았다. 등굣길에 몸이 불편한 고령자 집을 방문해 쓰레기를 수거하는 기특한 초등생들이 있고, 시골 빈집에 예술가를 초빙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열혈 촌장이 있다. 노인시설의 치매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예쁘게 화장해주는 화장품회사가 있고, 할머니 고객의 안전을 위해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늦춰주는 백화점도 있다. 점포 안에 고령자 간병센터를 두는 ‘케어 편의점’이 생기고, 한 세차장은 치매 환자들의 재활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한다. 쿠폰을 발행해 집에 은둔한 노인들을 자원봉사 현장으로 끌어내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둘째, 초고령화가 낳은 여러 가지 신<(新)>풍경들, 즉 ‘고령화 뉴트렌드’.
고독사가 늘자 ‘고독사 보험’이 생기고, 빈집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회사가 등장하는가 하면, 어떤 경비회사는 출장 직원이 전구를 갈아주는 등의 가사대행 서비스까지 해준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온천 여행을 도와주는 ‘트래블 헬퍼travel helper’가 등장하고, 시내 러브호텔은 노인 고객들을 위해 계단에 난간을 설치하고 TV 리모컨 버튼도 글자가 잘 보이는 큼지막한 것으로 교체한다. 기계식 주차를 하듯 카드를 갖다 대면 부모님의 납골함이 자동으로 나타나는 첨단 납골당에서 참배를 하고, 우주장<(葬)>을 치르기도 한다.
고령화 신풍경을 잘 들여다보면 꽤 괜찮은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거다.
셋째, ‘젊은 노인’들이 만들어가는 그들만의 고령 문화.
‘젊은 노인’은 전후<(戰後)> 베이비부머, 이른바 ‘단카이<(團塊)> 세대’로 불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일본에서는 약68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이들은 일본의 고도성장과 쇠퇴기를 함께하면서 일본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이들을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자주 화제가 되겠지만, ‘58년 개띠’라 불리는 한국의 젊은 노인들의 문제를 예견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의 베이비부머는1955~1963년생들.
일본 ‘단카이 세대’의 특징은 우선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한다’는 평생 현역을 당연시한다. 생계를 위해서라기보다 일 없는 무료함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알기 때문. 또한 그들은 시간과 체험을 소중히 한다. 손자와 어학연수 가고, 나 홀로 여행을 즐기며, 디스코텍에서 ‘늙음’을 발산한다. 이들은 마지막 가는 길도 자기 손으로 준비한다. 죽어서 잠들 묫자리를 미리 정하고, 묘지를 함께할 이들과 생전에 ‘무덤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한국과 다른 점도 있지만 같은 점은 더 많다.
그렇다고 고령화라는 것이 반드시 어둡고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 고령연금 수령일이 되면 남녀노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러브호텔과 쇼핑몰 등에서 보듯 새로운 비즈니스장이 열리기도 한다. 또 ‘안티에이징’을 대표되는 老化를 혐오하고 부정하는 게 아니라 늙음과 죽음을 자연스럽고, 그리고 존엄하고 깊게 향유하는 한 시기로 보자는 것.
이 책은 ‘저출산고령화’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맞춰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찾고자 하는 정부공공기관, 그리고 중심 고객의 이동이라는 ‘시니어시프트’ 흐름에 맞춰 적극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에 좋은 아이디어뱅크, 데이터뱅크가 될 것이다.
일본이 '재팬 이즈 넘버원'을 외치던 1988년, 도쿄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일본과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14년, 2002년 매일경제신문 도쿄 특파원으로 일본을 다시 찾았다. 당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자신감을 크게 상실하고 있었다. '월드컵 4강', '욘사마 韓流' 삼성, LG전자의 급부상 등으로 위상을 높이는 이웃 '코리아'와 강한 대조를 보이면서. 다시 12년 후,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부활극을 연출했다. 당시는 국제부 데스크로 그 변화의 현장을 독자에게 전했다. 지난 30년간 필자의 삶 곁에는 항상 일본이 있었던 셈이다.
2011년 은퇴 매거진 창간을 준비하던 미래에셋은퇴연구소로부터 <노인대국 일본은 지금>이라는 주제의 컬럼 기고를 요청 받았다. ‘한국의 고령화 양상도 일본과 엇비슷할 것이고, 그런 만큼 일본은 좋은 케이스 연구감’일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책은 그로부터 6년여 간의 일본 고령화에 대한 연구와 관심의 결과물이다. 고령화라는 인류 미증유의 도전에 대한 일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기업의 대응 경험이 이 책에 담겨있다. 한국에도 타산지석이 될 것이라 감히 여긴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 대학 경제학부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수학했다. 도쿄특파원과 국제부장을 거쳐 현재 매경비즈 교육총괄부장으로 일하고 있다.《복잡계 경제학》, 《대공황 2.0》, 《2014년 일본파산》 등을 번역했다.
들어가는 말 | 단카이 세대에 신 고령사회를 묻다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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