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가난한 빈민촌에서 보낸 안드레예프는 이때의 인상을 자신의 작품들에서 묘사하고 있다. 1891년, 페테르부르크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한 안드레예프는 생활고로 인한 호구지책으로 문학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892년 그는 잡지 <별>에 굶고 있는 학생을 묘사한 최초의 단편소설 <가난과 부>를 발표했다. 1893년, 학비를 못내 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제적된 후 그는 모스크바대학교 법학부에 편입했다. 1894년, 또다시 사랑에 실패한 안드레예프는 자살을 시도해 그 결과 만성 심장병을 얻게 되었다.
1897년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모스크바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잠시 변호사로 일하다가 <모스크바 통보>의 법정 통신원으로 근무했다. 같은 해 말 그는 신문 <파발꾼>에 법정 관련 기사를 쓰고, 체계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단편들에서 안드레예프는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가난에 시달리며 기쁨을 잃어버린 아이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 하층 관리들, 기술자, 부랑자, 거지, 도둑, 창녀, 아이, 어른 등 부르주아 도시의 무산자들과 이들에게 가중된 삶의 무게, 괴로운 노동, 계속되는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와 더불어 안드레예프는 인간의 개성을 억압하고 인간의 정신적 독자성을 획일화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 고립된 인간과 단절된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기도 하다.
안드레예프는 혁명과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독자적인 문학, 비정치적 예술을 추구했다. 1919년 9월 12일 뇌출혈로 핀란드의 시골 마을 네이볼에서 사망했다. 스탈린 시대에 안드레예프는 판금 작가로 분류되며, 1930년 이후 그의 작품은 소련에서 출판되지 않았다. 스탈린 사후 1956년 복권되어 재평가되며, 그의 유해는 레닌그라드(현재 페테르부르크)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