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요, 나 좀 도와줘요.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죠?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n하지만 그 소녀라고 유주의 말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소녀는 곤란한 얼굴로 옆의 남자를 바라보았다.n남자가 말없이 유주의 손을 잡더니 큰 조각상 앞으로 데려갔다. 매끄러운 검은 돌로 만든 늘씬한 여인의 조각상이었다. 눈에는 보라색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n남자가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그 조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n“파차마마.”n이 사람이 정말! 아직도 나를 파차마마라고 생각하는 거야?n“아니라고요. 마난! 마난! 나는 파차마마가 아니에요. 당신들이 잘못 안 거라고요! 내 이름은 유주예요. 유주! 유주!”n자신을 가리키며 유주가 반복하여 이름을 말했다.n“유주.”n남자의 입에서 나온 ‘유주’라는 단어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달콤하고 은밀하게 들려 유주는 심장이 덜컹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자신의 이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듣던 그 이름이 남자의 입에서 나오자 왜 그리도 특별하게 들리는 걸까?n잠시 항의하는 것도 잊고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몇 명의 여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할머니가 남자에게 뭐라고 얘기하자 그는 그녀를 두고 나가 버렸다.n“이봐요. 어디 가요? 가지 말아요.”n그가 사라지는 것이 불안하여 외쳐 봤지만 따라가려는 그녀를 여자들이 못 가게 막더니 난데없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n“왜 이래요? 당신들 뭐하는 거야?”n겁이 난 유주가 발버둥 치며 소리 질렀지만 여러 명의 손을 당할 수는 없었다.n메고 있던 작은 가방을 시작으로 입고 있던 얇은 점퍼와 티셔츠, 청바지까지 모두 여자들의 손에 벗겨져 나가자 유주는 수치심과 불안감에 다시금 눈물이 나왔다.n“내 옷 돌려줘요!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n울먹이고 있자니 그들은 벗겨 낸 그녀의 옷과 가방을 소중하게 갈무리해 할머니에게 건넸다.n혹시 도망가지 못하게 홀딱 벗겨 놓으려는 건가? 정말 너무하는 거 아냐?n할머니가 소녀에게 명령하자 그녀가 새 옷을 들고 유주에게 다가와 입으라는 시늉을 했다. 곱게 염색되어 화려한 문양이 있는 천으로 만든 긴 원피스였다.n뭐라도 걸쳐야겠기에 일단 유주는 그 옷을 얼른 입었다. 여자들이 옷 입는 것을 거들어 주고 허리에 띠를 매주었다. 머리에는 아름다운 색실을 두껍게 꼬아 만든 끈을 여러 겹 감고 화려한 새의 깃털을 꽂았다.n운동화를 벗긴 후 신긴 것은 바닥이 가죽으로 된 샌들이었다. 특이하게도 신발 바닥이 발 크기보다 작아서 발가락들이 고스란히 앞으로 노출되게 만들어져 있었다. 화려한 색실로 만든 끈으로 아름답게 매듭을 지어 샌들을 장식했다.n유주가 치장을 모두 마친 것을 소녀가 할머니에게 전하자 할머니가 파차마마의 신상 앞으로 다가갔다. 유주는 여자들에 이끌려 신상 옆에 자리했다. 신상 앞에서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할머니의 손에 들린 것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이었다.n뭐야? 설마 나, 파차마마에게 바치는 제물 같은 거 되는 건가?
<계옥>으로 처음 인사드리는 은유정입니다.
처음 써 본 글이 조아라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게 되어 많이 기쁘고
용기를 얻어 앞으로 더 재미있는 글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