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전서공 임난수 장군의 19세손이다. 어렸을 때부터 임장군의 후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임장군이 어떤 분인지에 관하여는 정작 성인이 되고도 한참 지난 30대 중반이 돼서야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임난수 장군이 지닌 역사적 무게의 한계도 있거나와 뿌리 의식에 대한 인식도 미미했기 때문이리라. 선조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의 아빠가 되고 나서 모 사이트에 「뿌리찾기」라는 산문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때 비로소 족보를 뒤져 보기 시작했으며 양화리에 있는 숭모각을 찾아 은행나무 두 그루의 위용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직계 후손으로써 이름 석자 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였음에 부끄러운 마음을 감당키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마음을 씻어보고자 제대로 된 뿌리 찾기를 시작한 것이 나이 40이 되어서였다. 그 결실이 미흡하나마 열매를 맺은 지 여러 해 지났지만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간 『임난수, 누구를 위해 싸웠나.』『상려암』등의 이름으로 전자출판 시장에 고개를 내밀었었다. 이제 다시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장군 임난수』라는 제하에 세상을 노크해 본다.n 임난수 장군은 고려 말의 문무겸전한 충신이었다. 무신으로는 최영장군과 함께 탐라 정벌의 공과 왜구들의 토벌에 앞장 선 공이 있었다. 홍산 전투에서 오른손 팔을 잃은 이후에는 문과에 입신하여 공조전서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의 벼슬과 대조하면 판서에 해당한다. 무관 시절에 이성계 장군의 휘하에서 요동 정벌에 나섰던 전력이 있기에 이성계 장군과도 교분이 있었으나 위화도 회군과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들었다. 이후에 낙향하여 향리에서 숨을 거두셨다. 그분의 자취가 세종특별자치시에 가면 지금도 선명하다. 「상려암」과 「숭모각의 은행나무」에……
자동차사고 손해사정인으로 보험회사 대인보상과 및 법인과 개인 손해사정인으로 약 10년가량 종사하였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대한 전문서적 750쪽 분량의 [자동차사고 손해배상론]을 집필, 발표하였다. 이후 부동산 포털 사이트의 중부지사장으로 약 5년 종사하며 IT 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산문집 [아버지의 종이비행기]와 장편소설 [아리랑고개]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입문했다.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발표한 책으로는 시집 <취업준비생>이 있고, 장편소설 <바다> <임난수, 누구를 위해 싸웠나> <스킬라의 추억> 등이 있다. 단편소설 <낙화유서(洛花遺書)>는 스위스와 독일에서 발표되었다.